σ Kim Jae Y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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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노라마 사진
채석강 앞 방파재에서 둘러본 360도 파노라마 사진으로 채석강과 등대, 격포항을 한눈에 돌아볼 수 있습니다. (그림보기☞)

가는길
경부고속도로 회덕분기점에서 호남고속도로를 타고가다 태인 교차로에서 30번 국도를 따라 가면 부안을 지나 격포에 이른다. 서울 한남대교 남단에서 약 295kM 거리로 4시간쯤 소요된다. (자세히☞)

숙소
채석강해수욕장 앞에는 여관이 여럿 있다. 모항해수욕장의 해안 절벽 위에 위치한 별장 스타일의 모항레저가 추천할만 하다. 가격이 다소 비싸고 콘도형이기는 하지만 식기를 준비해야 하는 것이 흠이다. (자세히☞)

까페
모항과 곰소 사이 바닷가에 까페가 3개 있다. 작당21, 추억을 나누며, 둥지. 특히 추억을 나누며는 야외에 산책로가 마련되어 있어 좋다. (자세히☞)

먹거리
계화도에서 잡은 백합으로 만든 향긋하고 감칠맛 나는 백합죽이 유명하다고..(자세히☞)

 

 

변산반도

 

바다와 산과 호수가 어우러진 곳, 노을이 붉게 물드는 아름다운 해변과 포구가 있고 유서깊은 절과 계곡이 있으며 적지 않은 유적지가 흩어져 있는 변산반도는 한번쯤은 꼭 찾아가볼 만한 곳이다.

답사여행의 길잡이 전북편에서는 변산반도를 이렇게 소개하고 있다. "잔잔한 바닷물에 부서지는 햇살과 한 구비 돌 때마다 펼쳐지는 씻어낸 듯 맑은 풍광에 젖어 변산반도를 일주하노라면, 아름다운 자연과 더불어 오래 전부터 이곳에 쌓여온 사람살이의 자취를 흠뻑 맛보게 된다. 대웅전 꽃살문이 아름다운 내소사와 울금바위 아래 소담히 자리잡은 개암사, 해안선을 따라 이어지는 고려 시대 가마터, 우동리의 당산과 반개 유형원 유허지, 곰소 일대의 염전들과 서해 수호신의 집인 격포 수성당 등에는 부안 사람들의 삶이 알뜰히 물려 있다. 또 부안 읍내에서 만나게 되는 동문안·서문안 당산의 할아버지 할머니 장승과 조선 시대의 여류 시인 매창의 시비에도 부안의 얼굴은 있다."

신석정공원
조선 태종 16년(1416)에 부령현과 보안현을 합친 후 두 곳의 이름을 한 자씩 따서 붙였다는 변산반도의 관문 부안을 지나 30번 국도를 타고가다 변산교를 지나면 신석정 공원을 만나게 되는데 이때야 비로소 변산반도에 접어드는 느낌이 든다. 공원안 언덕에 올라서면 바다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도록 꾸며져 있다.

새만금 방조제
공원을 지나 내리막길을 가다보면 눈앞에 새만금 방조제 공사현장이 나타나는데 방조제 못미쳐서 '제2의 시화호'를 우려하는 목소리들이 수많은 장승과 배와 구름과 새 모양의 조형물들로 바닷속에 자리잡고 있다. 방조제는 아침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일반에게 개방되어 차를 타고 들어갈 수 있다.

변산해수욕장
변산교에서 5.5Km 정도 지점에 변산해수욕장이 위치하고 있다. 해수욕장 옆에 주차장이 자리잡고 있다. 그리 매력적인 해수욕장은 아니다.

채석강과 적벽강
변산해수욕장을 지나 7.5Km 지점에 채석강해수욕장이 나타난다. 입구에서 주차료 4천원(당일권)과 공원 입장료 1,300원(어른 기준)을 내야한다. 입구 좌측의 주차장으로 가는 대신에 우측 길을 따라 계속 가면 일몰 장소로 제격인 적벽강이 나온다. 여기서 3Km 정도는 한적하기도 하거니와 해안가 드라이브 코스로 손색이 없다.

채석강과 연이은 격포해수욕장을 지나 수성당이 있는 용두산을 돌아 대마골여우골을 감도는 2km 가량의 해안선을 적벽강이라고 부른다. 중국의 '적벽강'에서 이름을 따왔다고 전해지며 연인들의 나들이 코스로 유명한 적벽강은 말 그대로 붉은색을 띠는 바위 절벽으로 이루어져 일몰을 감상하기에 제격이다. 밑으로 난 길을 따라 내려가면 해변가로 다다르는데 한적하게 바다를 즐기기에 좋다.

적벽강 바닷가 벼랑 끝에는 서해의 수호신을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수성당이 있다. 일명 '개양할미'라고 불리우는 수성할머니는 딸 아홉 중에서 여덟을 우리 나라 각 도에 시집 보내고 막내딸을 데리고 수성당에 사는데, 키가 몹시 커서 굽 달린 나막신을 신고 서해 바다를 걸어다니며 수심을 재어 어부들을 보호하고 풍랑을 막아준다고 한다.매년 음력 정월 초사흘에 제사를 지낸다고..

채석강은 변산반도 서쪽 끝 격포항과 그 오른쪽 닭이봉 일대 1.5km의 층암 절벽과 바다를 총칭하는 이름이다.당나라 이태백이 빠져 죽었다는 채석강과 비슷하다고 해서 채석강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마치 수만권의 책을 쌓아놓은 듯 단층이 인상적인 채석강도 볼 만하지만 옆의 방파제에서 맛보는 골뱅이 맛 또한 일품이다. 채성강 앞에서는 소당도와 토끼섬을 도는 유람선이 운항한다.

모항
채석강에서 30번 국도를 따라 남쪽으로 6.2Km 지점에 있는 모항에는 자그마한 백사장이 있고 절벽 위에 별장 같은 숙박시설이 그림 같은 곳이다.

곰소
변산반도 남쪽 곰소만 일대에는 천일제염 염전을 볼 수 있다. 이 곳 염전들은 한때 번성하던 줄포항이 폐항되어감에 따라 1938년 곰소항을 서해 어업의 전진기지로 개항하면서 바다를 막을 때 생긴 것들이라고 한다. 모항에서 염전지대가 있는 곰소까지는 15Km 거리이다.

내소사
곰소 앞 3Km 지점에서 내륙으로 2Km 정도 들어가면 전나무 숲으로 유명한 오래된 절 내소사가 있다. (주차장 4천원, 공원입장료 2600원) 내소사는 백제 무왕34년(633) 소래사라는 이름을 창건되었다고 한다. 일주문에서 천왕문까지 600m 가량이 전나무 숲길로 이어진다. 벚꽃이 만개하는 4월 중순과 단풍빛 고운 10월 하순경 이 숲길은 가장 아름답다고 한다. 청왕문을 지나 경내로 접어들면 계단 위로 수령 950년의 당산나무가 눈에 들어온다.

능가산 봉우리가 병풍처럼 둘러싼 경내에는 범종각과 봉래루, 삼층탑, 설선당, 대웅보전이 들어서 있다.높았다 낮았다 높이가 일정하지 않은 봉래루의 주춧돌은 윗부분만 다듬어 기둥을 얹은 것들이라 기둥도 짧았다 길었다 한다. 조선 인조 11년에 건립되었다는 대웅보전은 정면 8칸의 문짝이 연꽃과 국화꽃 문양의 꽃살문이 아름답다. 이 건물은 못을 쓰지 않고 나무토막들을 깎아 끼워 맞춰 세웠다고 한다.

전설에 따르면 청민선사가 절을 중건할 당시 대웅전을 지은 목수는 3년 동안이나 나무를 목침덩이만하게 토막 내어 다듬기만 했다. 장난기가 발동한 사미승이 그 중 한 개를 감추자 나무깎기를 마치고 토막 수를 헤아려 본 목수는 자신의 실력이 법당을 짓기에 부족하다면서 일을 포기하려 했다. 사미승이 감추었던 나무토막을 내놓았지만 목수는 부정 탄 재목을 쓸 수 없다 하여 끝내 그 토막을 빼놓고 법당을 완성했다. 그래서 지금도 대웅보전 오른쪽 앞 천장만 왼쪽에 비해 나무 한 개가 부족하다고 한다.

 

내소사 대웅전 단청
                                                                                     서정주

내소사 대웅보전 단청은 사람의 힘으로도 새의 힘으로도 호랑이의 힘으로도 칠하다가 칠하다가 아무래도 힘이 모자라 다 못 칠하고 그대로 남겨놓은 것이다. 내벽 서쪽의 맨 위쯤 앉아 참선하고 있는 선사, 선사 옆 아무것도 칠하지 못하고 너무나 휑하니 비어둔 미완성의 공백을 가 보아라. 그것이 바로 그것이다.

이 대웅보전을 지어놓고 마지막으로 단청사를 찾고 있을 때, 어떤 해어스럼제 성명도 모르는 한 나그네가 서로부터 와서 이 단청을 맡아 겉을 다 칠하고 보전 안으로 들어갔는데, 문고리를 안으로 단단히 걸어 잠그며 말했었다.

"내가 다 칠해 끝내고 나올 때까지는 누구도 절대로 들여다보지 마라." 그런데 일에 폐는 속에서나 절간에서나 언제나 방벙맞은 사람이 끼치는 것이라. 어느 방정맞은 중 하나가 그만 못 참아 어느 때 슬그머니 다가가서 뚫어진 창구멍 사이로 그 속을 들여다보고 말았다.

나그네는 안 보이고 이쁜 새 한 마리가 천장을 파닥거리고 날아다니면서 부리에 문 붓으로 제몸에서 나는 물감을 묻혀 곱게 곱게 단청해 나가고 있었는데, 들여다보는 사람 기척에 "아앙!" 소리치며 떨어져 내려 마루 바닥에 납작 사지를 뻗고 늘어지는 걸 보니, 그건 커어다란 한 마리 불호랑이었다.

"대호 스님! 스님! 어서 일어나시겨라우!" 중들은 이곳 사투리로 그 호랑이를 동문 대우를 해서 불러댔지만 영 그만이어서, 할 수 없이 그럼 내생에나 소생하라고 그 절 이름을 내소사라고 했다. 그러고는 그 단청하다가 미처 다 못한 그 빈 공백을 향해 벌써 여러 백년의 아침고 저녁마다 절하고 또 절하고 내려오고만 있는 것이다.

부안댐
변산교에서 내륙으로 3Km 쯤 가다보면 부안댐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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