σ Kim Jae Y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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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거대한 역사의 도시 로마

수년전 유럽 역사의 중심지라는 로마에 가고싶다는 막연한 생각에 로마에 관한 여행 안내서와 역사 서적 두권을 구입한적이 있다. 여행 안내서는 알고 떠나는 세계여행 로마편이었고 역사 서적은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 1권 이었다. 책 두권을 갖다 놓고 탐독하면서 로마 여행에 대한 꿈을 키웠다. 마치 그 옛날 중학교 입학시험을 보던 시절 가고싶은 학교 교복을 미리 사서 책상머리에 놓고 공부를 하기도 했다는 선배들의 전설적인 이야기 처럼...

어떻게든 로마에 가겠다는 일념하에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던 중 때마침 회사에서 연구소집단 경연대회를 개최하게 되었다. 중요한 것은 1등부터 3등까지의 포상이 해외여행이란 점이었다. 눈이 번쩍 뜨인 나는 그 때부터 회사 동료들을 꼬득여서 연구소집단 프로젝트를 등록하고 무려 6개월여에 걸쳐 이들을 들들 볶아댄 덕분에 드디어 대망의 공동 대상을 차지하게 되었다. 300만원의 포상금과 프로젝트 팀원 5명 모두의 해외여행.. 이제 남은 것은 주최측을 설득하여 해외여행지를 로마로 하는 일만 남은 것이다. 꿈이 이루어지려는 순간~ 상상도 못했던 사건, 천재지변보다 더한 IMF 사태가 터졌다. 급속히 썰렁해지는 회사 분위기로 인해 포상여행은 꼬리를 감추는 듯 하더니 몇 개월 뒤 제주도 여행 티켓으로 변신하여 우리손에 쥐어졌다. 그로부터 한동안 로마에 대한 꿈을 접고 생업에 종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로부터 수년 뒤인 2002년, 새해를 맞고 얼마 후 신정 연휴기간 동안 나는 무슨 신의 계시라도 받은 양, 불쑥 로마를 향해 떠났다. 물론 두어달 전부터 치밀한 계획을 세웠지만 말하자면 내 심정이 그랬다는 얘기다. 아무튼 결과적으로 내가 월드컵 이전에 로마를 다녀왔다는 것은 참으로 다행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 월드컵 패배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로마의 소매치기들이 마치 애국지사나 된 듯이 한국인의 호주머니를 보복 공격하는 사태가 벌어진다면 이 얼마나 끔찍한 일이겠는가?

(↑) 파리나 이태리의 지하철이 지저분하다는 얘기는 익히 들어왔지만 이정도로 낙서가 심할 줄은 몰랐다. 도대체 어느 세월에 저런 그림을 그리고 앉았는지 놀라울 뿐이다.      (↗) 대한민국의 모든 운전학원이 일렬주차 매뉴얼을 바꿔야할지도 모를 특이한 주차광경이다. 모터쇼에서나 보았던 초소형 승용차가 버젓이 도로를 질주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로마 중앙역에 도착하여 역 근처에 숙소를 정한 후 처음 찾아간 곳은 에스퀼리네 언덕에 자리잡은 산타 마리아 마조레 성당이다. 2,7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로마는 티베레 강가의 일곱개 언덕위에 건설되었다. 그 중 하나가 에스퀼리네 언덕인데 다른 언덕 중 가장 크고 높지만 로마시내의 빈촌중의 하나이다. 5세기에 지어진 이후 로마네스크 양식의 종탑과 르네상스 양식의 천장, 바로크 양식의 이중 돔 등 다양한 스타일의 건축양식이 조화를 이루고 있는 점이 특징이라고 한다.

산타 마리아 마조레 성당이 세워진데는 전해오는 전설이 있다. 352년 어느날, 교황 리베리우스가 꿈을 꿨는데 꿈속에서 성모마리아가 그에게 눈을 발견하는 자리에 교회를 세우라고 말했다. 한여름인 8월5일 아침, 에스퀼리네 언덕에 눈이 왔고 교황은 성모마리아의 말에 따라 교회를 세웠다. 이 눈의 기적을 기념하기 위해 매년 산타 마리아 마조레에서는 천장에서 수천개의 하얀 꽃잎이 떨어지는 동안 미사가 진행된다고 한다.

(↖)탑으로 보이는 것은 산타 마리아 마조레 광장의 대리석 기둥으로 1615년 이 기둥에 동정녀 마리아와 어린이의 동상이 추가되었다. (↑)성당 내부의 파올리나 예배당으로 플라미니오 폰치오가 설계했고 교황 바울5세인 보르게제를 위해 화려하게 장식되었다고 한다. (↗)성당 내부의 돔형 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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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타 마리아 마조레 성당을 나와 에스퀼리네 언덕의 숲을 지나 콜로세움에 도착했다. 로마에서 가장 큰 원형극장으로 72년에 베스파시아누스 황제가 세웠는데 왕과 부유한 로마시민이 관람하는 가운데 검투사가 맹수와 죽음을 건 싸움을 벌이던 곳이다. 5만명이 넘는 관중이 들어갈 수 있어 규모로 보아도 지금의 여느 경기장에 비해 손색이 없을 정도이다. 콜로세움 입구에는 입장객들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표를 사야하는 것도 탐탁지 않았기에 문틈으로 내부를 엿보는 것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콜로세움에서의 검투는 보통 동물 서커스로 시작되었다고 한다. 서커스에 이어 두명의 검투사가 나와 싸움을 하는데 한사람이 죽을 때까지 계속되었다. 검투사는 대게 노예나 전쟁포로, 또는 범죄자로 구성되었다. 싸움 도중 심하게 부상을 입은 투사는 황제에게 자신의 운명을 물어보게 되는데 황제가 엄지손가락을 들어올리면 살지만 엄지손가락을 내리면 죽게 되었다고 한다.

세월이 흘러 지진으로 무너진 돌들은 르네상스 시대에 왕궁과 다리, 성 베드로 성당을 짓기 위해 쓰이기도 했다. 콜로세움 옆에는 개선문처럼 생긴 것이 세워져 있는데 이는 콘스탄틴의 아치라고 불리운다. 이 아치는 315년에 막센티우스를 물리친 콘스탄티누스를 기념하기 위해 세워졌다고 한다.

(↑)콜로세움 앞에는 로마시대 군인 복장을 한 남정네들이 돈을 받고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었다. 나는 돈을 달라고 할까봐 멀찌감치서 망원렌즈로 이들의 모습을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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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시내 전체가 역사 박물관이라 불리우듯이 곳곳에 유적지가 널려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콜로세움 옆으로 5분 거리에 고대 로마의 정치, 상업, 사법의 중심지인 포룸이 있었는데 건물 한두 개가 아니라 거대한 시가지를 이루고 있었다. 그 중에는 셉티미우스 세베루스의 아치와 같이 원형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것도 있지만 대부분 심하게 파손된 경우가 많았고 후대에 복원된 것도 있었다.

포룸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이 맞은편에 보이는 셉티미우스 세베루스의 아치이다.(아래 그림 ④⑩) 203년에 셉티미우스 세베루스의 즉위 10주년을 기념하여 세워졌는데 중세기에 이르러서는 반쯤 땅에 묻혀 이발소로 사용되기도 했다. 서대문 고가도로 옆에 옹색하게 세워져 있는 독립문이 연상되었다. 아치 왼쪽에는 새턴 신전의 흔적이 8개의 기둥으로 서있다.(그림 ⑥⑦) 새턴은 농업의 신으로 신전은 여러번 재건되었으며 현재 남아있는 기둥은 4세기 경에 만들어진 것이라고 한다.

포럼 중간부근에 서있는 기둥은 포카스의 기둥으로 불리운다.(그림 ⑧) 높이 13.5m이며 세로로 홈을 판 모양의 이 기둥은 무슨 건물의 잔해가 아니라 608년 비잔틴 황제인 포카스의 로마 방문을 기념하기 위해 세워진 것이다. 포룸 동쪽 끝 구석에는 지붕 모양이 전갈을 연상시키는 안토니누스와 파우스티나 사원이 서있다.(그림 ⑤) 141년에 안토니누스피우스 황제가 아내 파우스티나를 위해 세운 사원이다.

포룸 동쪽 중간부근에 서있는 티투스의 아치는 81년 도미티아누스 황제가 그의 형 티투스와 아버지 베스파시안이 유대에서 거둔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세운 것으로 19세기 재건축물이다.(그림 ②) 역사는 승리자의 역사라는 말이 있다. 티투스의 아치는 로마에게는 승리의 기념비이지만 잔혹한 로마 관리에게 반기를 들어 항거한 유대인들에게는 쓰라린 아픔의 상징일 것이다. 문득 몇 년 전까지 광화문 한복판에 우뚝 세워져있던 조선총독부 청사가 떠올랐다. 어떤 이들은 이것을 철거하려할 때 역사적 가치를 내세워 보존해야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결국 조선총독부 청사는 철거되었고 그 자리에는 경복궁 복원공사가 2009년까지 계속되고 있다. 나는 이것이 무척이나 잘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로마의 포럼을 보며 더욱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일제에 의해 훼손되고 파괴된 역사를 복원하는 것은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고 우리의 자존심을 다시 세우는 뜻깊은 일이 될 것이다. 역사는 후대에 의해 복원될 때 그 가치를 더한다는 것을 로마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포럼은 고대 로마 사회를 보여주는 야외역사 박물관으로 쥐라기 공원에 비유될 수 있다. 아울러 포럼은 복원의 역사이다. 여행중에 기차에서 만난 어떤 여행객은 이곳 이태리 사람들이 조상 잘만나서 관광수입으로 먹고산다고 비아냥거렸다. 그러나 나는 좀 생각이 다르다. 유적지가 많은 것은 분명 복이지만 세월이 흐르도록 이 유적을 잘 보존하고 복원해온 노력은 인정받아야할 부분이다. 굴러들어온 복으로 오히려 불행해지는 경우를 우리는 많이 보아오지 않았던가.


          ①                     ②                     ③                     ④                 ⑤


          ⑥                     ⑦                     ⑧                     ⑨                 ⑩


          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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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룸에서 셉티미우스 세베루스의 아치를 지나 계단을 올라가면 고대 로마의 요세였던 카피톨에 도착한다. 콜로세움과 포룸을 둘러보며 이미 감동을 물결이 일렁이던차에 카피톨에 이르자 감동은 절정에 이른다. 미켈란젤로가 설계했다는 캄피돌리오 광장 주변으로 누오보 궁전과 세나토리오 궁전(그림 ⑤), 콘세르바토리 궁전이 둘러싸고 있다. 세나토리오 궁전의 경우 12세기경부터 로마 원로원으로 사용되었는데 지금은 로마 시장의 집무실로 쓰인고 있단다. 참으로 기이한 느낌이 들었다. 덕수궁을 서울시장 집무실로 쓴다는 것과 같은 것 아닌가?

역시 미켈란젤로가 설계했다는 거대한 층계인 코르도나타를 걸어내려가 베네치아 광장에 서자 빅토르 엠마누엘 기념물의 거대한 규모와 위용에 압도되어 버렸다.(그림 ①②③④) 통일 이탈리아의 초대 왕인 사보이의 빅토르 엠마누엘 2세를 기념하기 위해 1911년에 세워진 거대한 대리석 건물로 앞에는 빅토르 엠마누엘 왕이 말을 탄 12m 크기의 조각상이 세워져있다.


       ①                 ②                     ③                     ④                    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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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치아광장을 나와 티베레강 방향으로 걸어내려오자 진실의 입으로 유명한 산타 마리아 인 코스메딘 교회가 나타났다. 오드리햅번과 그레고리팩이 주연한 영화 로마의 휴일에도 등장한 바 있는 바로 그 진실의 입이다. 기원전 4세기에 만들어졌는데 거짓말한 사람이 진실의 입 속에 손을 넣으면 손목이 잘려 버린다는 전설이 전해져온다. 가까이 갈 수 없도록 철조망이 쳐있었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손목을 짤린 때문에 그랬나 보다. 위험한 물건이 아닐 수 없다. 사실 진실의 입은 하수관 마개로 쓰였던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찝...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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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타 마리아 인 코스메딘 교회를 나와 티베레 강가를 조금 거슬러 올라가자 티베레 섬이 나타났다. 섬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작아서 큰 배 모양을 연상시키는 티베레 섬 중앙에는 10세기에 세워진 산 바르톨로메오 교회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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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베레 섬을 나와 북쪽으로 한동안 걸어가자 유럽 건축 역사상 가장 거대한 건물로 불리우는 판테온이 나타났다. 판테온은 로마에서 가장 잘 보존된 고대 신전으로 알려져 있다. 실내로 들어서자 거대한 공간 위의 돔형 천장이 탄성을 자아내게 했다. 특히나 돔 중앙에는 구멍이 뚫려 있는데 신기하게도 빛은 통과시키지만 빗물은 막아낸다는 것이다. 125년에 아드리아누스 황제가 만들었는데 건물 높이와 돔의 지름이 모두 43.3m이다. 거대한 천장의 무게를 지탱하기 위해 속이 빈 재질로 돔을 만들고 벽사이에 벽돌을 끼워넣어 무게를 분산시켰다고 하니 그 오랜 옛날의 뛰어난 건축술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해가 지자 판테온 앞의 로톤다 광장에는 많은 야외 까페들이 불을 밝혔다. 판테온의 맞은편 까페에 자리 잡고 앉아 음료수를 마시며 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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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테온의 로톤다 광장을 나와 서쪽으로 잠시 걸어가자 나보나 광장이 나타났다. 중앙의 피우미 분수를 중심으로 광장은 남북으로 길게 뻗은 타원형의 모습이다. 유럽에서 보아온 광장치고는 아주 큰 편이었다. 베르니니가 디자인했다는 피우미 분수는 1651년에 만들어졌는데 조명을 받아 더욱 시원스레 물줄기를 떨구어냈다 ... 사실 기온이 좀 쌀쌀했다. 나보나 광장 주변은 강렬한 색체와 개성적인 특징을 갖는 바로크 양식의 수많은 궁전과 교회들로 가득했다. 로마의 모든 거리가 야외 역사 박물관이라는 사실이 다시금 실감나는 순간이었다. 광장 한편에서는 인디안 처럼 보이는 삼인조 악단이 음악을 연주하고 있었다. (몇 개월 후에 광화문 네거리 지하도에서 거의 똑같은 모습의 악단을 보게되었다. 혹시 이들은 전세계를 떠돌아다니는 유랑극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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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보나 광장을 나와 트레비 분수를 향해 한동안 밤길을 걸었다. 얼마를 갔을까.. 주위 건물과 다소 어울리지 않는 느낌속에 영화촬영 세트같은 분위기의 트레비 분수가 나타났다. 거대한 건물 외벽에 바다의 신 넵튠과 두 트리톤을 형상화한 분수는 1762년에 만들어졌다고 한다. 우리에게 있어서 건물은 주거공간이지만 이 사람들에게는 예술작품인 모양이다. 이토록 건물 하나 분수 하나마다 섬세하게 공을 들인 노력이 대단하게 느껴졌다. 트레비 분수에 도착함으로써 로마에서의 첫날 일정은 끝을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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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아침 일찍 일어나 지하철을 타고 바티칸으로 향했다. 휴일 아침이라 거리는 한산했다. 성 베드로가 순교한 곳으로서 성탄절 미사가 열릴 때면 항상 텔레비젼 뉴스에 등장하는 바로 그 바티칸의 성 베드로 성당과 산 피에트로 광장을 보게된다는 설레임에 가슴이 떨려왔다. 지하철에서 내려 바티칸의 거대한 외벽을 따라 걷다가 도착한 곳은 바티칸 박물관 앞이었다. 미켈란젤로의 작품인 시스티네 예배당, 라파엘의 방 등 세계의 진귀한 예술품을 소장하고 있는 로마 최고의 박물관이라는 바티칸 박물관이 그날따라 휴관하는 날이었다. 박물관 문앞에서 사진을 찍으며 아쉬움을 달랬다. 유명한 박물관이라 그런지 문도 예술이었다.

벽을 따라 걷다가 성 베드로 성당 앞의 산 피에트로 광장에 들어섰다. 광장 중앙에는 1586년에 세워진 기념비가 자리잡고 있었다. 광장을 가로질러 성 베드로 성당으로 들어갔다. 성당안에 들어서는 순간 우선 그 규모에 압도당했다. 길이가 187m, 천장 돔의 높이가 132.5m에 달하며 완성하는데만 100여 년이 넘게 걸렸다고 한다. 천장의 돔은 미켈란젤로가 설계하였고 교황 제단 덮개는 베르니니의 작품이라고.. 수많은 예배당과 제단들, 대리석으로 만든  기둥과 모자이크 장식 등 성당 내부는 하나의 거대한 박물관처럼 보였다. 때마침 미사가 있었는데 성당 뒤에서부터 신부의 행렬이 웅장한 음악에 맞춰 등장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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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듯한 마음으로 성 베드로 성당을 나선 후 화해의 길을 따라 걷다보니 티베레 강가에 있는 산탄젤로 성이 보였다. 원래 무덤으로 만들어졌다가 중세에는 성이나 감옥으로 쓰이기도 했고 한때 교황의 주거지로 사용되기도 했다고 한다. 1277년에는 교황이 위험에 처했을 때 피신하기 위해 바티칸 궁전과 산탄젤로 성을 연결하는 바티칸 갤러리를 만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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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탄젤로 성을 나와 티베레 강가를 따라 걸어가다가 다리를 건너 포폴로 광장에 이르렀다. 타원형 광장 중앙에 기념비가 세워져 있고 바닥은 돌로 포장되어 있었다. 18세기경 종종 공개 처형이 이곳 포폴로 광장에서 이루어졌다고 한다. 광장 뒤 언덕위에 자리잡은 핀치오 정원에 오르자 광장을 비롯하여 이 일대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 보였다. 정원에는 참나무와 종려나무가 늘어서 있고 오롤로조 거리에는 1889년 파리 박람회에 전시된 적도 있다는 물시계가 설치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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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에서 가장 유명한 관광지의 하나가 바로 스페인 광장의 스페인 계단일 것이다. 17세기에 교황청 스페인 대사가 이곳에 본부를 둠으로 해서 스페인 영토로 여겨졌다고 하는 이 곳은 영화 로마의 휴일에 소개된 것으로도 유명하다. 로마를 여행하는 배낭여행객들은 어김없이 스페인 계단에 자리잡고 앉아서 휴식을 취하거나 사진을 찍거나 혹은 지나가는 행인을 쳐다보며 시간을 보내곤 한다. 계단 앞에 있는 바르카치아 분수는 베르니니와 그의 아버지 피에트로가 설계한 것이라고.. 계단을 걸어 올라가자 곳곳에서 연인들의 뜨거운 포옹과 키스가 이어졌다. 으음... 괴로운 순간이 아닐 수 없다. 계단 끝까지 올라가면 로마에서 가장 멋진 풍경을 가졌다는 교회 트리니타 데이 몬티가 나타났다. 두 개의 종탑이 있는 이 교회는 1495년에 프랑스인이 건립한 것으로 교회 내부의 그림들도 볼 만하지만 교회 앞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이 무척이나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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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광장을 지나 남쪽으로 걸어가다보니 트레비 분수가 보였고 좀더 내려가자 콜로세움으로 향하는 길목에 트라얀 시장이 나타났다. 2세기 초기 트라야누스 황제시대에 150여개의 상점이 들어선 트라얀 시장은 오늘날의 쇼핑센터에 해당하는 것으로 고대 로마시대 불가사의 중의 하나로 불리운다. 그 오랜 옛날 이와 같은 문명을 누렸던 로마인들을 생각하면 그저 놀라울 뿐이다. 상점 2층에서는 무료로 옥수수를 나눠주어 거지가 생기지 않게 했다고 한다.

트라얀 시장을 지나 콜로세움에 도착했다. 지하철을 타고 로마 중앙역으로 향했다. 로마에서의 짧은 여정을 마치는 순간이었다. 로마를 제대로 둘러보기 위해서는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었지만 오랜시간 꿈꿔왔던 여행인 만큼 보람도 컸다. 거대한 역사의 도시 로마, 지금은 그들이 남긴 유적을 둘러보는데 그쳤지만 훗날 그 유적 속에서 살아 숨쉬는 로마인들의 삶을 느낄 수 있는날 다시 찾기로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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