σ Kim Jae Y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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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시내지도>

 

  • 빛의 도시 - 파리

토요일 오후, 사무실을 일찍 나온 나는 인천신공항으로 내달렸다. 주차료를 생각하면 집에 들러 옷을 갈아입고 서울역에서 버스를 타고가야 했지만 비행기 시간에 맞추려다 보니 눈물을 머금고 차를 몰고 공항으로 달렸다. 장기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차안에서 옷을 갈아입고 셔틀버스를 타고 공항 출발 지점으로 갔다. 공항 검색대를 통과하다가 스위스칼이 걸렸다. 별로 쓸일도 없을 것 같았지만 명색이 배낭여행인지라 언제 쓸일이 생길지 몰라 챙겨두었던 것이다. 검색대 옆에서 칼을 소화물로 운송 접수시키고 비행기에 올랐다. 인천신공항에서 파리까지는 직항노선으로 9시간 정도 거리이다. 내가 탄 에어프랑스는 좌석마다 모니터가 설치되어있어 채널별로 비디오와 음악 그리고 게임까지 즐길 수 있기 때문에 지루하지 않게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공항 책방에서 시간날 때마다 틈틈이 읽으려고 구입한 책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는 여행기간 내내 50쪽을 읽는데 그쳤다. 공연히 배낭만 무겁게 들고다닌 셈이었다. 하지만 무거운 베낭 덕분에 여행을 마친 후 나의 몸상태는 한결 좋아졌다. 배낭을 메고 하루종일 돌아다닌 때문에 어깨도 튼튼해졌고 다리도 딴딴해진 것이다.

파리의 샤를 드골 공항에 도착하여 RER역으로 갔다. RER은 파리 교외에서 시내가지 연결되는 국철로 5개 노선이 있다. 역에서 RER B선을 타고 북역(Gare du Nord)으로 갔다. 여기서 지하철 메트로 5호선과 11호선을 번갈아 타고 미리 숙소를 보아둔 Goncourt 역으로 갔다. 파리는 유럽의 여느 도시와 마찬가지로 규모가 그리 크지 않고 14개의 지하철 노선이 거미줄처럼 연결되어 있어 거의 모든 지역을 지하철로 다녀볼 수 있다. 지하철 티켓으로는 10장 묶음(그렇다고 묶여있는 것은 아니다)인 까르네(carnet)로 구입했다. 가격은 9.3유로 정도로 한 장 살 때의 1.3유로보다 상당히 저렴했다. 이외에도 1주일 또는 1개월간 지하철, 버스, RER(국철)을 무제한으로 사용하는 까르뜨 오랑주와 하루동안 무제한 사용하는 모빌리스 쿠퐁 주르날리에가 있다고 한다.

공항에서 PRINTEMPS라는 무료 관광안내지도를 구했는데 여기에는 상세한 시내 관광지도와 지하철, 버스노선도가 들어있어 여행내내 충실한 가이드 역할을 했다. 이후에도 여행지 역에 도착하면 항상 'I'로 표시된 인포메이션에 들러서 관광지도를 구할 수 있었고 이 지도가 여행기간 내내 큰 도움이 되곤 했다. 파리에서 3일 정도 들고다닌 시내 지도는 거의 너덜너덜해질 정도가 되었는데 원하는 관광지마다 지하철 몇호선 어디 행을 타고 어디서 갈아타고 어디서 내려야 하는지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했다. 처음에는 좀 어려웠지만 하루이틀 지나자 지도가 곧 눈에 익었다.

파리의 지하철은 우리나라와 시스템이 비슷하지만 몇가지 차이점이 있었다. 우선 역 사이의 간격이 매우 짧았고 신형 객차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수동문이라서 지하철이 역에 도착하면 내리는 사람이든 타는 사람이든 문고리를 돌려서 열어야 했다. 열차가 플랫폼에 도착하여 정지할 즈음 '찰칵' 하며 안전장치가 풀 리는 소리가 난 후에 물고리를 돌려야지, 그렇지 않고 미리 돌려대면 열리지도 않고 초짜 취급을 받을 수도 있었다. 파리 시내 전체가 그렇지만 지하철에도 화장실이 없는 것이 특징이었다. 유일하게도 맥도널드 햄버거 가게에 가면 화장실이 있었다. 로마의 경우도 시내 관광지도를 보면 곳곳에 맥도널드 가게 위치가 M으로 표시되어 있었는데 파리 지도에도 동그라미 속에 'M'자가 곳곳에 표시되 있었다. 그런데 이것은 햄버거 가게가 아니고 '메트로' 즉 지하철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파리의 지하철은 오묘한 화장실 냄새가 정신을 몽롱하게 한다. 어째서 파리 지하철이나 시내에는 공공화장실이 거의 없는 것일까? 화장실 유지관리비가 비싸서? 범죄발생의 온상이 될 소지가 크기 때문에 아예 만들지 않은 것일까? 파리에는 오래된 건물들이 많았다. 중세시대에는 건물안에 화장실이 없고 길밖에 오물을 내다 버렸다는 얘기가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굽이 높은 신발을 신고 다녔다는 얘기를 들은 기억이 났다. 오~ 제발 밥먹을 때는 이런 기억이 떠오르지 않기를... 오래된 건물이 많아 처음부터 구조적으로 화장실이 없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지하철 밖으로 나가는 출구에서는 표를 넣지 않고 그냥 통과하도록 되어있었다. 무임승차의 욕망을 부채질하는 대목이다. 다만 검표원이 불시에 표검사를 하여 25유로의 벌금을 부과한다고 한다. 이태리 밀라노에서는 어느날 아침 역무원들이 불시에 출구에 늘어서서 표검사를 하는 장면을 목격하였다. 근데 독일의 뮌헨은 한술 더 뜬다. 출구라고 해도 표를 넣고 통과하는 곳이 없고 통로 한쪽켠에 표를 넣고 찍는 기계가 한두 개씩 설치되어 있었다. 시험 감독 없이 시험보는 상황이라고나 할까? 순간적으로 멍한 느낌이 들었는데 이런 것을 문화적 충격이라고 하나부다.. 일전에 제주도에 갔을 때 차들이 하도 천천히 다녀서 나는 제주도 사람들이 모두 느긋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곳곳에 속도 측정기가 설치되어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이것이 전적으로 성격 때문만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뮌헨의 경우도 사복 역무원이 불시에 표검사를 한다고 했다.

파리공항에 내려서부터 느낀 점이지만 파리의 날씨는 7~8월에도 18도 전후로 비교적 서늘하다고 한다. 반 바지에 반팔티를 입은 나로서는 여행 내내 추위에 떨어야 했는데 이틀 후,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오페라극장 건너편의 베네통 상점에서 세일로 긴팔티를 구입하고 나서야 추위를 모면할 수 있었다. 파리의 지하철을 타고 가면서 나는 비로소 이곳 파리에는 온갖 인종들이 모여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되었다. 특히 흑인들이 눈에띄게 많았는데 알고보니 1950년경 인력이 부족해서 북아프리카와 이탈리아, 스페인 등지에서 대대적으로 이민을 받아들였다고 한다. 파리에서는 인종 차별이 매우 적다고 하는데 이런 점은 다음 여행지인 독일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라고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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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에 도착한 첫날 저녁무렵, 숙소에 짐을 내려놓고 첫 방문지로 콩코드 광장을 찾았다. 숙소에서 메트로 11호선을 타고가다가 시청에서 1호선을 갈아타고 콩코드 역에서 내렸다. 파리 시내 중심 부근에서 약간 좌측에 위치한 콩코드 광장은 원래 루이15세의 기마상을 세우기 위해 만들었지만 프랑스혁명때 단두 대가 세워지면서 대혁명 광장으로 불리우게 되었다고 한다. 내가 도착한 날은 마침 프랑스혁명 기념일 전날이었다. 광장 주변에는 다음날 있을 기념식을 위해 방송차량이 줄을서서 세워져 있었다. 갑자기 학창시절 읽은 프랑스혁명사가 떠올랐다. 정확히 말하면 읽었다는 사실만 기억났지 내용은 하나도 떠오르지 않는 뭐, 그런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도 또렷이 기억되는 이름들 루이16세와 마리 앙트와네트, 당통, 로베스 피에르 등 역사속의 인물들이 바로 이곳에서 단두 대의 이슬로 사라졌다는 것이다. 역사적 사실에 대한 감동 보다는 저녁 노을이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약간의 시장기를 느낀 나는 콩코드 광장 옆 튈르리 정원 입구에서 끄레뻬(crepes)를 사먹었다. 우리나라 부침개 같은 끄레뻬는 밀까루 앏게 부쳐 둘둘 말아 여러 가지 넣어 먹는 대중적인 음식이라고 한다. 끄레뻬를 우물거리면서 튈르리 정원으로 들어가니 저쪽 너머로 멀리 루브르 박물관이 보였다. 박물관은 다음에 가기로 하고 정원을 나와서 광장의 서북쪽 방향으로 큰길을 따라서 걸었다. 개선문을 보기 위해서였다. 해가 뉘엇뉘엇 질 무렵 멀리 개선문이 보이는 큰 길 양 옆은 샹젤리제 거리라고 불리웠다. 상점들이 즐비하게 늘어서있고 노천까페와 사람들로 붐비는 거리인데 해가진 후 야경이 더욱 아름다운 곳이다. 밤 10시가 넘어서야 어두워지는 것을 볼 수 있었는데 이것은 여행하는 입장에서는 매우 반가운 현상이었다. 그만큼 돌아다닐 수 있는 시간이 많았으니까.. 샹젤리제 거리 끝부분에 위치한 샤를 드골 광장에 그 유명항 개선문이 놓여 있었다.

밤에 조명을 받아 한층 빛나는 개선문은 그 웅장함으로 보는이를 압도했다. 특히 개선문 중앙에서 힘차게 펄럭이는 대형 프랑스 삼색기의 역동적인 모습은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다. 6월4일, 부산 월드컵 주경기장에서 한국 대 폴란드전을 시작할 때 스탠드에서 펼쳐지던 대형 태극기를 처음 보던 순간 느꼈던 감동을 잊을 수가 없는데 아마도 그 다음으로 감동적인 느낌이었다. 프랑스 군대의 승리를 축하하기 위해서 1836년에 세워졌고 바닥에는 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던 무명용사들의 무덤이 있다고 한다. 개선문을 중심에 두고 12개의 큰 길이 방사형으로 뻗어나갔다. 개선문에서 남쪽방향으로 에펠탑이 보였다. 개선문을 구경한 후 샹젤리제 거리로 돌아와 걷다가 지하철을 타고 숙소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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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아침, 베르사유 궁전을 찾아가기로 했다. 베르사유 궁전은 파리시내에서 남서쪽 외곽방향에 위치했다. 숙소에서 메트로 11호선을 타고 한정거 가서 Republique역에서 5호선으로 갈아타고 Gare d'Austerlitz역에서 RER C선으로 갈아탔다. Versailles 방향을 확인했다. RER C선은 파리 시내에서 세느강을 끼고 달렸다. 10여분을 가다보니 기차가 시내를 벗어나 교외지역을 기분좋게 달렸다. 그런데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기차가 너무 빨리 시내를 벗어났다. 그리고 세느강이 오른쪽 창밖으로 보여야 했는데 반대편 창에 나타났다. 다시금 지하철 노선도를 펼쳐놓고 곰곰히 생각해봤다. 그렇다. 거꾸로 탄 것이다. 그럴 리가 없는데... 황급히 기차에서 내려 노선표를 자세히 봤다. RER C선은 한쪽 종착역이 Versailles-Rive Gauche역이고 반대편은 Versailles-Chantiers 역이었다. 나는 앞부분 Versailles만 확인하고는 덥썩 기차를 탔는데 그것이 거꾸로 탄 것이었다. 역무원에게 사정을 해서 표를 다시 받고는 반대편으로 가는 기차로 갈아탔다. 종착역인 베르사유 리브 고쉬 샤토 드 베르사유 역(Versailles-Rive Gauche Chateau de Versailles)에서 내렸다. 화장실이 있는 맥도널드에서 햄버거를 사서 배낭에 챙겨 넣었다. 점심 때 베르사유 정원에서 따뜻한 햇살을 맞으며 맛있게 먹을려고 마음먹었다.. 냠냠~

역에서 궁전까지는 걸어서 10분 정도 거리였다. 궁전 정문에 이르렀을 때 생각보다 궁전이 좀 낡고 칙칙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정문을 들어서자 성직자의 안뜰이라 불리우는 넓은 광장이 나타났고 그 앞에 루이14세 동상이 서 있었다. 궁전 구조가 로마의 바티칸 성당과 비슷한 느낌을 주었다. 동상을 둘러싸고 궁전 건물이 세워져 있었는데 궁전 오른쪽 건물에서 입장권을 팔고 있었다. 줄을 섰다. 그런데 줄이 줄어들지 않았다. 땀이 줄줄 흘렀다. 그때였다. 프랭카드를 앞세운 일단의 시위대가 궁전 광장에 나타났다. 시위대는 루이14세 동상을 돌며 구호를 외쳤다. 좌우지간 맥도널드에 반대하는 시위대였다. 마음이 묘했다. 내 베낭속에는 맥도널드 햄버거가 들어있었다. 잠시 후 입장을 중단한다는 방송이 나왔고 매표가 중단되었다.

궁전에 들어가는 것을 잠시 미루고 먼저 정원을 둘러보기로 했다. 규모가 너무 커서 걸어다니기에는 무리였다. 궁전 오른쪽 미니열차 정거장에서 표를 사서 미니열차에 올랐다. 미니열차는 정원 입구를 지나 잘 가꾸어진 길을 따라 천천히 달렸다. 열차는 쁘띠 뜨리아농이라는 작은 건물 앞에 섰다. 1760년에 지어졌고 훗날 마리앙드와네뜨가 가장 좋아하는 곳이 되었다는 쁘띠 뜨리아농, 건물은 소박한 느낌이 들었고 옆에 정원이 있어 아늑했다. 쁘띠 뜨리아농 오른편에 난 길을 따라가니 시골마을이란 곳이 보였다. 궁전에 왠 시골마을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알고보니 마리앙드와네뜨가 왕비가 된 다음에 영국식 정원과 가축들과 작은 연못 그리고 물방앗간까지 구비한 작은 모의 농촌을 지은 것이라고 한다.

 

농촌마을 옆으로 난 길을 따라가다가 그랑 뜨리아농이란 곳으로 향했다. 가다가 대리석으로 지은 작은 궁전 건물 앞 그늘아래 앉아서 베낭속에 넣어둔 햄버거를 꺼내 먹었다. 음료수는 없었지만 먹을만 했다. 파리에 도착한 이후로 먹은 것이라고는 햄버거와 샌드위치 뿐이었다. 그래도 루이14세가 그의 후궁과 밀회를 즐겼다는 화려한 정원에 앉아 챙겨 먹는 점심은 괜찮았다.

그랑 뜨리아농은 건물보다는 넓은 정원이 마음에 들었다. 옆에는 소운하와 대운하로 불리우는 인공호수가 열십자로 겹쳐있어 그 큰 규모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랑 뜨리아농은 왕과 왕족들이 엄격한 궁중생활에서 오는 긴장을 풀기 위해 사용했다는 곳인데 지금은 자전거를 타거나 달리기를 하는 프랑스인들을 보니 음... 부러웠다. 나도 아침마다 회사 앞에 있는 덕수궁에서 조깅을 한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다. 수건을 목에 두르고 덕수궁 문앞에서 양치질을 하며...사진을 한 장 찍은 다음 여행 다니다가 외국사람을 만나면 사진을 보여주면서..."우리 집이야~" 할텐데...

그랑뜨리아농에서 나와 미니열차 정류장에서 열차를 타고 궁전으로 돌아왔다. 이제는 들어갈 수 있겠지..하는 생각에 매표소로 갔는데 엄청나게 긴 줄이 늘어서 있었다. 시위는 계속되고 있었고 이대로 돌아갈 수는 없다는 각오로 맨 뒤에 줄을 섰다. 한참을 기다려도 표는 팔지 않았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줄은 조금씩 앞으로 가는 것이다. 중간에 포기하고 돌아가는 사람도 있었고 건물 밑으로 가서 쉬었다가 오는 사람들도 있었다. 아무튼 한시간 반은 족히 기다린 후에야 궁전에 입장할 수 있었다.

 

 

너무 오랜 기다림 탓일까? 왕이나 왕비의 거처에 들어가 보았는데 좀 칙칙했다. 헤라클레스의 방, 풍요의 방, 비너스의 방, 다이아나의 방, 마르스의 방, 머큐리의 방, 아폴로의 방 등등 꼬리에 꼬리를 무는 방의 행렬이 계속되었는데 그방이 다 그방 처럼 보였다. 전쟁의 방을 지나서 그 유명하다는 거울의 방에 이르렀다. 17개의 커다란 아치형 창문과 맞은편의 아치형 거울, 그리고 천장에서 길 게 늘여뜨려 매달린 화려한 샹들리에, 이 모든 것들이 햇살에 반짝이는 광경을 보려 했는데 유감스럽게도 구름낀 날씨에다 해도 기울어 햇살은 들지 않았다. 그래도 좋았다. 제1차 세계대전을 종식시키는 베르사유 조약이 바로 이곳 거울의 방에서 체결되었다고 하지 않던가. 우리나라도 언젠가 남과 북이 중요한 조약을 체결한다면 어떤 역사적인 장소에서 하는 것이 좋을까? 청와대는 너무 폐쇄적인 공간이라 훗날 일반인들이 다시 찾기 어렵고, 국회의사당은 무위도식하는 인간들이 서로 "내똥 굵다~!" 하며 물고 띁는 싸움판이라 아이들 교육상 좋지 않고, 차라리 4천만 국민을 똘똘 뭉치게 했던 2002 월드컵 응원의 메카인 시청앞 광장이 어떨까...?

오래도록 기다린 시간에 비해 베르사유 궁전을 관람하는 시간을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궁전을 둘러싼 넓은 정원, 그 정원에서 조깅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더욱 인상적이었다. 박물관 처럼 박제된 곳이 아니고 그냥 구경하고 돌아가는 곳이 아니라 그 곳에서 달리고 자전거 타고 뛰어놀며 생활 공간으로 이용하는 모습이 부러웠다. 그리고 문득 생각했다. 뭐~ 우리도 양재동 시민의 숲이 있어. 거기엔 윤봉길 의사 기념관도 있고~ 아! 그리고 자동차 극장도 있지.. 베르사유 궁전을 나온 나는  RER을 타고 파리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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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에 도착한 나는 시테섬으로 향했다. 시테섬은 파리를 가로지르는 세느강의 오른쪽 부근에 위치한 섬으로 서울의 여의도와 비슷하지만 크기는 훨씬 작았다. 시테섬에는 노틀담의 꼽추로 잘 알려진 노틀담 대성당이 있고 한때 왕궁의 일부였으나 프랑스 혁명때 감옥으로 사용된 콩시에르쥬리가 있다. 이곳은 마리 앙트와네트, 당통, 로베스피에르 등이 처형당하기 전에 수감되었던 곳으로 유명하다. 콩시에르쥬리 뒤편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가시면류관과 십자가 조각을 보관하기 위해 지어진 고딕양식의 예배당인 생트샤펠 성당이 있다. 시테섬 서쪽의 최고 재판소도 멋진 건물이다. 파리의 웬만한 건물들은 모두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어서 그런지 이젠 웬만큼 멋있지 않으면 좀처럼 눈길이 가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그런 가운데서도 노틀담의 성당과 퐁뇌프의 다리는 인상적이었다.

노틀담이란 이름을 들으면 으레 꼽추가 떠오르는데 사실 노틀담의 뜻은 성모마리아라고 한다. 1163년부터 무려 200여년 가까이 지어진 것으로 성당 정문이나 외벽 곳곳의 조각이 섬세했다. 성당 내부로 들어가니 마침 미사가 진행중이었는데 광광객들이 둘러보는 가운데 진행되었지만 엄숙한 분위기를 잃지 않았다. 성당 창문에 장식된 스테인드 글라스도 화려했고 높은 천장과 기둥의 웅장함은 로마의 바티칸 성당을 떠올리게 할 정도였다. 성당 앞 광장은 프랑스 내에서 거리를 정할 때 기준이 되는 제로 포인트라고 하는데 많은 관광객들로 붐볐고 비둘기에게 모이주는 아이들과 노인, 판토마임을 하는 거리공연 등으로 활기에 차 있었다.

시테섬을 나오기 위해 서쪽에 있는 퐁네프 다리를 건넜다. 프랑스 혁명 200주년 기념 축제를 배경으로 두 남녀가 권총을 난사하며 춤추고 질주하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던 영화 '퐁네프의 연인들'로 잘 알려진 다리이다. 영화에서 보았던 모습 그대로 다리 곳곳에 반원형으로 움푹 들어가 쉴 수 있는 벤치가 마련된 구조가 특이했다. 물론 영화는 퐁네프 다리를 그대로 재현하여 새로 지은 이른 바 세트에서 촬영한 것이라고는 하지만.. 이 다리는 1604년에 지어진 것으로 현존하는 세느강의 수많은 다리들 중 가장 오래된 것이라고 한다.

시테섬을 나와 근처의 Hotel De Ville로 갔다. 빌호텔이 아니라 시청 건물이다. 불어로 hotel은 원래 대처택이나 주요 건물을 뜻한다고 한다. 파리의 많은 건물이 그렇지만 시청 역시 화려하고 웅장한 건물이다. 건물 외벽 청소를 잘 안해서 그런건지 검푸른 빛이 지저분한 느낌도 주었지만 나름대로 역사와 전통을 보여주는 듯 했다. 시청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숙소로 돌아가기로 했다. 잠시 쉬었다가 나올려고 했다.

숙소로 돌아온 후 샤워를 하고 잠시 누웠다. 피로가 몰려왔다. 단꿈을 꾸며 잠에 빠져든지 서너시간이 지난 후에야 부시시 잠에서 깨어났다. 시계바늘이 9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순간적으로 고민에 빠졌다. 그대로 계속 자고 싶었다.. 그러나 파리행 비행기 요금이 얼마인지를 떠올 리는 순간 팔다리에서 잠들고 있던 힘이 불끈불끈 솟아나 자리를 박차고 일어날 수 있었다. 지하철을 타고 에펠탑으로 향했다. 에펠탑 전체를 가장 잘 보려면 세느강을 사이에 두고 탑 건너편에 있는 샤이요 궁을 가야 한다고 했다. 지하철로는 Trocadero 역에서 내리면 된다. 열차는 에펠탑을 향해서 달리고 있었다. 그런데 에펠탑에 못미쳐서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내렸다. 눈치코치 오감을 총 동원하던 여행자의 직감으로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Trocadero 역에 다다르자 열차가 역을 지나쳐 통과해 버렸다. 순간 베르사유궁에서의 시위 장면이 떠올랐다. 다음 역에서 내려 밖으로 나가려는데 나가는 출구를 경찰들이 막았다. 직감적으로 뭔가 사전이 터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 테러... 긴장된 마음으로 열차를 타고 오던 길을 되돌아갔다.

이번에는 에펠탑 이전 역에서 내렸다. 역앞은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순간 '펑~'하는 소리가 들렸다. 연이어 터지는 폭음소리~ 폭죽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에펠탑을 향해 서둘러 걸어가고 있었다.그제서야 나는 알았다. 프랑스 혁명 기념일을 맞아 에펠탑 앞에서 불꽃놀이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나도 바삐 달려갔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탑 근처에 모여 있었다. 하늘에서는 화려한 불꽃이 연이어 폭발하고 있었다. 에펠탑은 불꽃놀이를 위해 모든 조명을 끈 상태였다. 불꽃놀이가 끝나고 지하철로 돌아오는 길에 나의 배속에서 폭죽이 터졌다. 시장기가 몰려오고 있었다. 길거리 포장마차에서 샌드위치와 콜라를 샀다. 빵 한가운데 불에 구운 길다란 쏘세지를 넣고 매콤한 소스를 뿌렸는데 맛이 기가막히게 좋았다. 숙소에 돌아오자 12시 가량이 되었다. 씻고 잤다...zz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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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아침, 파리에서의 3일째날이다. 지하철 루부르 역에서 내려 역을 빠져나가는데 지하에서 박물관으로 연결된 통로가 닫혀 있었다. 아직 개장 시간 9시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지상으로 올라와 표지판을 따라 조금 걷다보니 박물관 옆 건물이 나타났다. 건물 안 광장으로 들어가자 중앙에 거대한 유리 피라미드 입구가 서있고 그 주위를 박물관 건물이 빙 둘러서있었다. 건물 자체만으로도 멋진 볼거리가 되는 곳이 바로 르부르 박물관이었다. 일찍이 요새로 지어졌다가 16세기에는 궁전으로 개축되고 다시 프랑스 혁명 이후로 미술관으로 변모했다고 한다. 프랑스혁명 200주년 기념일인 1989년에 지어진 피라미드는 박물관으로 들어가는 입구였고 지하로 내려가면 사방으로 박물관에 들어가는 통로가 마련되어 있었다.

루부르 박물관을 관람하는 것은 그 자체가 커다란 고행이었다. 225개의 방에 30여만점의 작품들이 전시되어있다고 하니 제대로 관람하려면 며칠이 걸릴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러나 무식이 도왔다. 미술이라고는 중고등학교 시절에 배운 것 말고는 없으니 이것이 그것 같고 그것이 저것 같아 전체를 둘러보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 몇년전 독일 하노버에서 개최된 컴퓨터 전시회때에도 코엑스 태평양관 같은 건물이 무려 26개로 전시회 규모가 엄청나게 컸으나 하루만에 모두 둘러본 경험이 있었다. 매표소에서 표를 사고는 내부 지도를 구했다. 하나하나 둘러본 방마다 표시를 해나갔다. 전시품들은 고대 이집트, 그리스, 페르시아 유물에서부터 로마, 이탈리아, 프랑스, 이슬람 그리고 중세 유럽의 미술품들이 망라되어있었다. 물론 그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조각품 비너스와 모나리자는 여전히 박물관 안에 잘 보관되어 있었다. 모든 전시품은 오로지 프랑스어로만 설명되어 있었다. 프랑스의 자존심이 보이는 듯 했다.

솔직히 너무나도 비슷한 작품들을 많은 터라 도대체 비너스와 모나리자가 왜 그리 유명한지 의문이 들 정도였다. 사실 두 작품 앞에는 진지하게 감상하는 사람들 보다는 기념사진을 찍는 관광객으로 붐볐다. 나도 그 중의 하나였다. 나중에 기차를 타고 가면서 두 작품에 대해 설명한 글을 찬찬히 읽고나서야 조금은 이해가 갈 듯 했다. 아무튼 박물관 안에서는 굶어죽기 딱 알맞았다. 까페가 하나 있었는데 줄을 서서 기다리다가 포기하고 말았다. 점심무렵이 지나자 허기가 졌다. 박물관 안에서는 음식물 섭취가 금지되어있는 듯 했다. 딱히 무엇을 먹을 만한 장소도 마땅치 않았다. 용감하게 전시관 안에서 빵이라도 먹다가 지적받으면 "쓰미마셍~" 하고 도망칠까도 생각했다. 그러나 화장실이 불렀다. 베낭안에 있는 비상식량을 가지고 화장실로 갔다. 과자 몇 개로 허기를 달래고는 나머지 전시관들 하나하나에 깃발을 꼽았다. 대여섯시간 만에 관람을 마치고 건물을 나섰다. 알고보니 박물관에서는 한번은 밖으로 나갔다가 들어올 수 있는 것 같았다. 아마도 식사하고 다시 들어오라는 뜻인 것 같았다.

박물관을 나와 식사를 하려고 두리번 거렸다. 여느때 같았으면 햄버거나 샌드위치를 찾았겠지만 오늘만큼은 달리 무엇인가 영양가 있는 거을 먹고 싶었다. 몸이 그것을 원했다. 며칠간의 강행군으로 심신이 피곤했다. 스태미너식이 필요했다. 길거리의 개들이 유유히 스쳐 지나갔다. 지하철역 근처 사거리에서 식당을 발견했다. 식당밖에 놓여진 좌석에서 사람들이 커피를 마시거나 간단한 식사를 하는 모습이었다. 안으로 들어갔다. 밖에서 보던 분위기와는 사뭇 달랐다. 약간의 긴장감이 느껴졌다. 자리에 앉자 한참 있다가 메뉴판이 왔다. 메뉴는 모두 프랑스어로 적혀 있었다. 그중에 해독이 가능한 글자가 눈에 띄었다. 스테이크와 콜라를 시켰다. 어차피 영양보충을 하기로 마음먹은 터였다. 얼마간이 지난 후 주문한 스테이크가 나왔다. 칼로 썰자 '찍~' 하고 피가 흘렀다. 먹을만 했다. 고기가 실하고 두터웠다. 여지껏 먹던 햄버거와는 질이 달랐다. 먹고나니 배가 든든했다. 햄버거에 비해 서너배의 값을 치뤘지만 저녁이 되도록 배가 고프지 않았다. 그 까페 이름은 Ruc였다. Cafe Ruc..

 

식사를 마친 후 다시 루브르 박물관 앞으로 갔다. 박물관 서쪽으로 작은 개선문이 보였다. 1805년 나폴레옹 원정의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로마의 개선문을 본따 세웠다는 카루젤 개선문이었다. 그 옆 세느강 쪽으로 가자 강 건너편에 오르세 미술관이 보였다. 튈르리 정원의 분수대를 지나 북쪽으로 향했다. 방돔 광장을 찾았다. 중앙의 청동탑을 중심으로 주위를 둘러싼 건물들은 모두 300여년 전에 지어진 것으로 지금은 호텔, 법무부 청사, 보석상 등이 들어서 있었다. 청동탑은 나폴레옹의 오스텔리츠 전투 승전을 기념하여 전리품인 1200개의 대포를 녹여 만든 것이라고 한다.

방돔 광장을 지나 오페라 하우스로 갔다. 1800 년도에 지어진 건물로 현재는 발레만을 공연한다고 한다. 오페라 하우스 앞 교차로는 대형 백화점이나 쇼핑몰로 둘러싸여 있었다. 그렇잖아도 긴팔티를 하나 사려고 하던 차였다. 파리의 쌀쌀한 날씨를 더 이상 견디기 어려웠다. 길 건너편에 베네통 매장이 보였다. 세일을 하는 중이었다. 이곳 파리에서 베네통은 대중적인 브랜드라고 들은 바 있었다. 매장에 들어가서 긴팔티를 하나 샀다. 종류는 많지 않았지만 가격은 그리 비싸지 않았다. 매장을 나와 지하철을 타고 몽마르뜨 언덕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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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을 나와 언덕을 향해 걸었다. 상점들이 늘어선 골목길을 올라가자 곧바로 언덕 입구가 나타났다. 언덕 꼭대기에 세 개의 돔으로 이루어진 성당이 보였다. 1870년 보불전쟁때 프랑스의 승리를 기원하며 기부금으로 지어졌다는 사크레쾨르 성당이다. 우리는 외세의 침략을 받을 때 팔만대장경을 만들었다는데 여기서는 성당을 지은 모양이다. 성당 앞에 서서 내려다보니 파리시내가 한눈에 들어왔다. 성당 앞에서 오른쪽 길로 걸어가자 조그마한 테르트르 광장이 보였다. 광장이라 해봐야 작은 공터이지만 주변에 까페가 있고 한쪽으로 화가들의 거리가 눈에 띄었다. 가난한 화가나 시인들이 싼 생활비 때문에 모여살 게 되었다는 이 거리는 고호나 피카소, 모딜리안 등 화가들로 유명해졌다고 한다.

광장앞 까페 야외 좌석에 앉아 스파케티를 먹으며 분위기를 잡았다. 광장을 내려오다가 벤치에 앉아 쉬고 있는 흑인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으려고 셔터를 누르는 순간 한명이 벌떡 일어나 달려들 듯 외쳤다. "스탑드!!" 발음이 그랬다. 찍지 말라는 뜻이었다. 나는 황급히 손을 들고 미안하다는 뜻을 표시했다. 언젠가 한번 들은 적이 있었다. 사진찍히는걸 무척 싫어하는 흑인들이 있다는 사실을... 한 대 맞을 뻔 했다.

몽마르뜨 언덕을 내려와 지하철을 타고 세느강을 지나 로댕 미술관으로 향했다. 로뎅이 살던 저택을 미술관으로 만들었다는 로뎅 미술관의 문은 굳게 닫혀져 있었다. 관람시간이 지났기 때문이다. 시간이 오후 6시 가까이 되가고 있었다. 로뎅의 유명한 작품인 '생각하는 사람'을 비롯하여 그의 제자이자 연인이었던 까미유 끌로델의 작품도 전시되어 있다고 했다. 아쉬움을 달래며 발길을 돌렸다. 길 건너편으로 황금색 돔이 보였다. 앵발리드였다. 앵벌이가 아니다~ 루이14세 때 부상병과 군인환자를 수용하기 위해 지어졌다는 말하자면 군 병원인 셈이다. 나폴레옹의 유해와 유물이 안치되어 있고 군사박물관이 들어서 있다. 이미 루브르 박물관에서 진을 뺀 터라 더 이상 박물관은 보고싶지 않았다.

앵발리드 좌측으로 파리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알렉상드르 3세교가 보였다. 1900년 파리 만국 박람회 기념으로 지어졌다. 다리 입구의 큰 탑위에 세워진 황금조각상이 눈에 띄었다. 대부분의 건물들에서 오랜 역사의 흔적을 느낄 수 있었는데 황금조각을 볼 때마다 왠지 어색한 느낌이 들었다. 너무 반짝거리는 색깔이 부조화스럽게 느껴진다고나할까.. 세월의 흐름이 느껴지는 고풍스런 절집에는 반짝거리는 황금 불상보다는 여기 저기 약간은 퇴색한 석불의 느낌이 어울리듯 말이다. 다리 옆 잔디밭에서는 일단의 무리들이 축구를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제서야 다시금 이곳이 유럽의 축구 강호 프랑스라는 사실이 상기되었다.

다리를 건너 세느강변을 따라 왼쪽으로 걸었다. 알마교 옆에서 유람선을 탔다. 해질무렵에 타서 야경을 보는 것이 가장 좋다고 한다. 유람선은 세느강 동쪽으로 한동안 가다가 시테섬 부근에서 한 바퀴 도는 것 같았고 다시 유람선 선착장을 지나 에펠탑을 지나갔고 자유의 여신상까지 갔다가 돌아왔다. 사실 유람선이 출발하고 10분 쯤 지났을 무렵 나는 졸고 있었다. 쌀쌀한 강바람을 쐬다가 실내로 들어와서 자리에 앉은 순간 피로가 몰려왔던 것이다. 정신을 차린 것은 배가 유턴을 할 무렵부터였다. 배위에서 바라보는 세느강의 여러 다리들과 강가의 이름 있는 건물들, 특히 운치 있는 조명으로 더욱 멋있게 보인 오르세 미술관도 좋았지만 강변 가까이에서 올려다본, 은은한 듯 휘황찬란한 조명에 빛나는 거대한 에펠탑이 옆으로 흘러가는 순간 턱하니 숨이 막히고 가슴이 두근거리는 감동이 느껴졌다. 다시금 내가 파리에 와있다는 사실을 실감할 수 있었다. 유람선은 출발한지 한시간 20분 쯤 후에야 선착장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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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람선을 내린 나는 지하철을 타고 에펠탑을 향했다. 사실 지하철로 두정거 정도 거리였지만 하루종일 걷느라 힘들었던 터라 체력을 아끼려고 지하철을 탔다. 에펠탑을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세느강 건너편에 있는 샤이요 궁으로 가야 한다고 했다. 샤이오궁은 1937년 만국박람회 때 건축되었는데 내부는 파리국립극장, 영화박물관, 문화재박물관, 해양박물관, 인류박물관으로 꾸며져 있다. 웬 박물관이 그리도 많은지.. 그러고 보면 만국박람회 때 지어진 건축물들이 꽤 많았다. 오르세 미술관으로 개조되기 전 기차역이 그렇고 알렉상드르 3세교, 그랑팔레와 쁘띠팔레 그리고 샤이오궁과 에펠탑이 만국박람회를 위해 지어진 것. 샤이오궁 앞 뜨로꺄데로 정원에 서자 비로소 에펠탑 전체가 시야에 들어왔다. 탑 내부에 설치된 조명으로 밝게 빛나는 에펠탑이 아름답게 서 있었다.

참으로 웃기는 일은 에펠탑이 처음 만들어졌을 당시의 파리 시민들의 반응이었다고 한다. '속 빈 촛대'라든가 '보기 흉한 볼트와 판금의 기둥'이라고 혐오하고 비난했다고 하지 않던가. 모파상은 에펠탑의 모습에 너무 실망한 나머지 2층에 있는 르 쥘 베른 식당에서 식사하면서 파리에서 에펠탑이 안보이는 곳은 그곳밖에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고도 한다. 탑 내부에 조명이 설치된 것은 1986년으로 지금은 좋던 싫던 국가적 상징이 되어 버렸다.

루브르 박물관에서 시작하여 에펠탑에서 끝난 하루 일정은 너무도 고된 강행군이었다. 박물관 앞 Cafe Ruc에서 먹은 스테이크가 아니었다면 도저히 버틸 수 없었을 것이다. 파김치가된 몸을 이끌고 에펠탑에서 10여분을 걸어 지하철로 갔다. 비몽사몽간에 지하철을 타고 가는데 옆자리에 배낭여행중인 한국 학생들이 앉았다. 먼저 도착해서 파리를 떠나려는 사람들에게 이제 도착한 학생들이 이것 저것 숨가쁘게 물어보고 있었다. "파리는 어디가 좋은가요?...루브르 박물관은 어떤가요?" "루브르 박물관에 가면 먼저 비너스하고 모나리자를 보세요. 그리고 재빨리 이동하세요." 뭐 그런저런 얘기들이 오고갔다.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음.. 보물찾기를 하고 있구만..

숙소에 도착하자 밤 1시가 되었다. 파리에서의 3일간의 일정이 모두 끝나는 순간이었다. 한달을 보아도 다 못본다는 파리를 3일간 숨가쁘게 돌아다녔으니 제대로 정리가 될리 만무했다. 나 역시 보물찾기를 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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