σ Kim Jae Y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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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준비 없는 여행

4월30일, 공항에 도착한 나와 익현은 공항버스를 타고 수원으로 갔다. 밤 8시경 호텔 캐슬 앞으로 익현의 부모님이 나오셨다. 엉겹결에 익현의 아버님과 악수한 나는 간단히 내 소개를 드린 후 죄송한 표정을 지으며 한 말씀드렸다.

"손 깨끗이 씻으세요.."

차 키를 넘겨받은 우리는 곧장 길을 떠났다. 앞서 오전 비행기로 먼저 공항에 도착한 나는 서점에서 여행서적을 산 후 익현이 올 때까지 여행 코스를 구상하고 있었다. 인적이 드문 한적한 곳이 이번 여행의 포인트였다.

(↓사진 : 이번 여행의 동반자 '익현')

 

책을 통해 갈 만한 곳을 찾던 나는 수원에서 가까운 의왕의 백운호수를 첫 번째 여행지로 정했다. 밤 10시경, 백운호수 도착한 우리는 백운장 여관에 짐을 풀고 호수가를 배회했다. 호수 주변에 자리잡은 수많은 레스토랑들이 불빛을 밝히고 있었다. 터사랑 레스토랑으로 들어가 간단히 맥주를 마시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던 우리는 새벽 1시경에야 숙소로 돌아와 잠을 청했다.

아침에 둘러본 백운호수는 커다란 저수지 같은 느낌이었다. 호수 주변에는 80여개의 음식점과 레스토랑이 늘어서 있어서 제2의 미사리로 불리운다고.. 서울 사당에서 차로 30분 거리이고 보트장과 수상스키장 그리고 호수 근처에 자동차 극장이 있어서 데이트 코스로 제격이라는 것이다. 따가운 아침 햇살을 맞으며 호수 주변에서 사진을 찍은 우리는 서해대교를 향해 차를 몰았다.

⊙교통 : 지하철 4호선 인덕원역이 있는 인덕원 4거리에서 성남 방향으로 가다가 의왕 농협 앞 삼거리에서 우회전하면 백운호수 입구에 도착. 지하철 4호선 인덕원역에서 시내버스나 마을버스로 15분 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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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안고속도로를 달려가던 우리는 행담도 휴계소에서 점심식사를 했다. 오랜만에 먹어본 바지락 칼국수는 곁들여 먹은 김치와 더불어 우리의 기대를 저 버리지 않았다. 왕만두 1인분을 추가로 먹고는 오랜만에 행복한 포만감에 젖었다.

식사를 마친 후 서해안고속도로를 내달려 무창포로 향하던 우리는 중간에 대천 해수욕장에 들렀다. 예전부터 여름 휴가철에는 많은 사람들이 대천해수욕장을 찾았고 그만큼 흔했기 때문에 내가 별로 찾지 않았던 곳이기도 했다.

해수욕 인파와 바가지 요금... 이런 것들을 떠올리면서 꺼려지던 곳이지만 해수욕장 그 자체만 본다면 매우 훌륭한 곳임에 틀림없다. 끝없이 펼쳐진 해변과 반짝이는 모래들.. 그렇다 . 대천의 모래는 조개가 잘게 부서진 패각분의 모래라서 감촉이 좋고 물에 잘 씻겨 내려간다는 것이다. 그리고 매년 7월에 개최되는 머드축제는 대천의 또다른 매력이다.

바닷가 한쪽에서는 남학생들이 여학생을 한명씩 들어다가 바닷물 속에 집어던지며 즐거워하고 있었다. 입가에 미소가 흘렀다. 누구나 한번쯤 경험해보았을 것이다.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고 오래도록 사랑받는 바로 그 '물텀벙이' 놀이...

너무 한적한 바닷가는 쓸쓸하게 느껴지지만 이곳 대천은 벌써부터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활기를 띄고 있었다. 물론 개장을 앞두고 해변을 고르기 위해 모래를 파헤친 모습이 흠이긴 했지만...커피를 한잔 마시며 바닷내음을 힘껏 들이마시고 길을 나섰다. 무창포로 향하는 남포방조제 길은 또다른 재미를 주었다.

⊙교통 : (철도) 서울~보령 3시간 소요. 장항~보령 1시간 소요. (버스) 서울 남부터미널에서 대천까지 간 후 해수욕장까지 시내버스 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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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천에서 남포방조제길을 따라 무창포 해수욕장에 도착한 우리는 해변 근처에 위치한 시사이드 모텔에 짐을 풀었다. 창문을 열자 창밖으로 해변이 펼쳐졌다. 어디를 가나 남자 두명이 숙소를 잡을 때마다 주인장으로부터 약간 의외라는 표정을 접해야 했다. 때문에 나는 방을 잡을 때마다 시위하듯이 카메라를 목에 걸고 다녔다.

간단히 짐을 정리한 후 해변 오른쪽 끝에 위치한 포구를 지나 빨간 등대로 갔다. ㄱ자로 꺽어지는 방파재를 한참동안 걸어가면 끝에 빨간 등대가 세워져 있다. 이상하게도 빨간 등대에는 낙서가 없다. 물론 바탕색이 진해서 낙서하는 맛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변산반도 채석강 옆에 있는 하얀 등대에는 온통 낙서 투성이다. "XXX 왔다감" 이런 것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와 △△△의 사랑 영원히~" 이런 종류이다.

왜 사람들은 이런 곳에서 자신들의 사랑을 확인하고 싶은 것일까? 중국 계림 시내에서 가장 높다는 첩채산에 올라가보면 사방을 둘러싼 쇄사슬 마디마다 사랑의 문구가 씌여진 자물쇄가 빼곡히 채워져 있다. 열쇄는 산 아래로 던져 버리는데 이렇게 함으로써 아무도 둘의 사랑의 자물쇄를 열 수 없도록 하여 사랑이 영원하기를 기원한다고.. 사랑하는 사람과 오래도록 함께하는 것도 좋지만 그 보다는 사랑의 감정이 오래 지속되길 바라는 것이 더 필요하지않을까?

등대에서 돌아오는 길에 해변가 식당에 들러 쭈꾸미 불고기를 시켰다. 주인아주머니는 기다리는 동안 구워먹으라며 조개를 주었다. 역시 여행의 즐거움은 먹는데서 배가되는 것 같다. 해변을 바라보며 연탄불에 조개를 구워 초고추장에 찍어먹는 그 맛을 무엇에 비할 수 있을까...

한잔 술로 얼큰해진 나는 해변가 벤치에 앉아 석대도 뒤로 넘어가는 해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동해에는 볼 수 없는 서해 바다만의 독특한 풍경인 낙조.. 해가 기울며  시시각각 변해가는 모습이 아름답고 특히나 수평선에서 한뼘 정도 위에 왔을 때 해변까지 길게 햇빛을 늘어뜨리며 반짝이는 순간이 가장 멋지다.

서해의 일몰은 언제나 많은 생각을 갖게 한다. 그래서 사랑을 키워가려는 연인들은 물론이고 자신의 지나온 과거를 돌아보고 싶은 사람은 서해 바다를 찾아보라고 권하고 싶다.

⊙교통 : 장항선 기차를 타고 웅천에 내려 시내버스를 타면 30분 정도 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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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창포에서 하룻밤 자고 일어나 해변을 거닐었다. 그리고 짐을 챙겨 변산반도로 향했다. 무창포에서 웅천으로 가서 21번 국도를 타고 달렸다. 춘장대 IC에서 서해안고속도로를 타고 가다가 줄포 IC에서 빠져나와 변산반도에 들어섰다.

해가 쨍쨍 내리쬐이는 맑고 청명한 날씨이다. 변산반도에서 처음 찾은 곳은 내소사. 전나무 숲길을 지나 대웅전 앞마당 도착했다. 푸른 나무와 분홍색 꽃이 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뒤로 소박한 빛깔의 대웅전과 산이 어우러져 한폭의 아름다운 그림을 마주대하는 듯 했다.

진입로의 전나무 숲길과 천박하게 화려하지 않고 소박한 절집, 창틀, 나무와 꽃들, 돌담, 햇살.. 이 모든 것들은 내가 내소사를 가장 아름다운 절로 손꼽는데 주저하지 않게 한다.

한적한 절에서의 여유로운 시간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한무데기로 몰려온 학생들로 인해 완전히 시끌벅적한 분위기로 바뀌었다. 여행을 하다가 단체관광객을 만나면 그들보다 한발 앞서 가라는 것이 내가 체험적으로 깨달은 생활의 지혜이다.

(↓사진 : 이번 여행의 동반자 '익현')

내소사를 나와 30번 국도를 타고 시계방향으로 달려 채석강에 도착했다. 채석강 옆 방파재 위에는 해물을 파는 좌판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아까 내소사에서 나오면서 해물파전을 먹지 않았다면 아마도 틀림없이 방파재 한켠에 자리잡고 앉았을 것이다. 침을 꼴깍꼴깍 넘기며 걸어가는 방파재 끝에서 하얀 등대가 우리를 맞았다. 그리고 흰 벽에 씌여진 낙서들이..

격포해수욕장 오른쪽의 해안 도로를 따라 가다가 적벽강에서 잠시 내렸다. 해가 질 무렵이면 연인들이 찾아와 절벽 위에 차를 세워놓고 일몰을 감상하는 적벽강, 아직 해가 중천에 떠있어 해질무렵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는 없었다. 역시 조명발이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적벽강을 나오면서 격포해수욕장에 들러 해넘이 채화대와 노을공주 동상에서 사진을 찍었다. 1999년 12월31일, 이곳에서 채화된 마지막 불씨가 남태평양의 피지섬에서 채화된 지구의 불씨, 포항의 장기곶에서 떠오른 새천년의 불씨와 합쳐져 영원히 불타오르고 있다고.. 이 얘기를 들은 익현이 한마디 했다. "가지가지로 하는군..."

격포해수욕장을 출발한 우리는 30번 국도를 타고 변산반도를 빠져나오다 곰소에서 내려 잠시 염전을 둘러보고는 줄포 IC를 통해 서해안고속도로에 진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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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안고속도로를 달리다가 선운사 IC를 빠져나와 선운사 입구 도착했다. 이름이 좋아서 동백장에 숙소를 정한 후 식사를 하기 위해 방문을 나서던 우리는 현관에서 한무데기의 단체 관광객과 마주쳤다. 선운사에서는 만나지 않기를 바라며 스치듯 지나갔다.

저녁식사로 풍천장어를 먹으러 갔다. 곳곳에 풍천 장어집이 즐비하길래 아마도 이곳의 별미인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어릴적 생선과의 악연으로 물고기를 별로 먹지 않는 익현을 위해 더덕구이를 한접시 더 시켰다. 말 그대로 마파람에 게눈 감추듯 쓱싹~ 해치워 버렸다. 구두를 삶아준다고 해도 그것이 한국음식이라면 뭐든지 맛있을 때였다.

다음날 아침, 녹음이 우거진 숲길을 지나 선운사에 도착했다. 경내는 부처님 오신날 준비로 다소 번잡스런 모습이었다. 대웅전 뒤에는 그 유명한 동백꽃이 피어있었다. 4월이 절정이라고 하더니 너무 늦게 온 때문일까.. 생각만큼 꽃들이 많이 피지는 않았다. 오히려 절 입구에 우거진 나무숲과 개울이 인상적이었다. 점심식사로 먹은 산채정식에는 19가지 반찬이 나왔다. 중국에서는 매끼니마다 1인당 한가지 반찬으로 식사를 했다. 실로 감개 무량한 순간이다.

☞선운사 파노라마 사진

 

선운사를 나와서 선운사 IC를 통해 서해안고속도로에 진입했다. 목포에서 톨게이트를 빠져나와 해남을 지나 813번 국도를 타고 송호 해수욕장에 도착해 잠시 쉬었다. 땅끝에 도착했을 때 선착장에는 보길도로 출발하는 배가 막 출발하고 있었다.

언덕위로 올라갔다. 수년 전에 왔을 때와 달리 전망대가 크고 웅장한 모습으로 '재건축'되어 있었다. 땅끝 탑까지 내려갔다 온 후 전망대에 올라갔다. 날씨가 그리 맑지 않아 전망이 좋지는 않았지만 탁 트인 바다 위로 활처럼 휘어진 수평선을 바라보며 새삼 지구가 둥글다는 생각을 했다.

숙소로 잡은 황토방 민박집에 짐을 풀고 식당에 들어가서 낙지볶음을 주문했다. 밥을 절반쯤 먹고 있는데 종업원 아주머니가 제법 먹음직스런 매운탕을 가져왔다. 감동적인 순간이었다. 생각지도 못한 서비스.. 이것이 바로 감동의 포인트가 아니더냐.. 매운탕이 보글보글 끓어 한 숟가락 뜨려는 순간 종업원 아주머니가 매운탕을 회수해갔다. 여기가 아니란다.. 머리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아침부터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가운데 땅끝을 출발하여 여수로 향했다. 강진, 보성, 순천을 지나 여수 돌산대교를 건넜다. 전에 왔을 때와는 달리 향일암 전방 2Km 부근의 휴게소 주차장에 차를 세워놓고 걸어가야 했다. 처음에는 어떻게 해서든 차를 몰고 가보려고 생각했지만 막상 걸어가면서 그 생각이 잘못됐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향일암 입구에 도착했을 때 주차공간은 통행이 허용된 대형 버스만으로도 이미 가득 차 있었던 것이다. 생각보다 걷는 거리는 멀지 않았고 다양한 풍경들을 감상할 수 있어서 좋았다.

여수 돌산도는 갓김치가 유명한가보다. 길가의 가게들마다 갓김치를 꺼내놓고 지나가는 관광객들을 손짓하고 있었다. 가파른 계단을 통해 향일암에 올랐다. 탁트인 남해바다가 시원스레 펼쳐져있었다. 오르내리는 길목마다 한국적인 돌담과 기와로 꾸며져있어 보기좋았다.

17번 국도를 타고 돌산도를 빠져나오다가 돌산대교를 수킬로미터 앞두고 도로가 꽉 막혀 버렸다. 무슨 사고라도 나지 않았나 싶어 차에서 내려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길거리 포장마차에서 산 도너츠로 배를 채웠다. 도너츠 아저씨 말씀이 휴일날은 항상 이렇다고... 그제서야 우리는 오늘이 일요일이라는 사실을 상기했다. 차안에 앉아서 컴퓨터로 '겨울연가'를 보며 지루함을 달랬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가운데 무려 3시간이 걸려서야 여수를 빠져나갈 수 있었다. 하지만 덕분에 해질무렵 돌산대교의 아름다운 야경을 카메라에 담을 수 있었다.

 

여수를 출발해 남해고속도로를 달려 통영에 도착한 것이 밤 12시반 무렵이다. 바닷가 근처를 빙빙 돌았지만 여관을 찾아볼 수 없었다. 시내 유흥가에 들어서서야 골목마다 즐비한 여관을 발견할 수 있었지만 빈 방이 없다는 얘기에 놀라야 했다. 어렵사리 구한 허름한 여관방에 짐을 풀고 잠자리에 들기 전 TV 채널을 돌리다가 엄청 야리꾸리한 케이블 방송에 넋을 읽고 한동안 뚫어지게 쳐다보던 우리는 어느 순간 몰려오는 피로를 견디지 못하고 쓰러지듯 잠이들었다.

아침에 일어나 통영 해안도로에서 사진을 찍은 후 거제도로 들어와 해안도로를 타고 장승포까지 내달렸다. 익현이 몇 년 전에 가족들과 함께 가보았다는 외도에 가기 위해서이다. 30여년 전 개인이 사들여 가꾼 외도는 100여종의 선인장과 300여종의 아열대 식물로 뒤덮여 남국의 정취가 물씬 풍기는 아름다운 섬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불행이도 외도행 배는 이미 매진되고 없었다. 주차장 관리인의 말에 의하면 새벽 3시경부터 사람들이 줄을 서기 시작해서 아침 7시 무렵에는 막배 정도가 남았었다는 얘기이다. 허탈하기 이를데 없었지만 하필 어린이날 이곳을 찾은 우리를 탓할 밖에..

허무한 마음을 삼대 전통의 충무김밥집에서 해물뚝배기와 김밥으로 채웠다. 충무김밥에 아무 것도 들어있지 않다는 것은 진작부터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밥이나 김은 나름대로 맛있게 조리되었을 것이라고 추측했었다. 그러나 내 생각은 여지없이 빗나가 버렸다. 아무런 맛도 나지 않는 맨밥을 보통 김에 둘둘 말았던 것이다. 3대째 이어져온 맛이라는 점에는 이의를 제기할 마음이 없다. 어부들이 배떠나는 길에 상하지 않고 먹을 수 있도록 아무것도 넣지 않고 만들어진 것이 충무김밥의 유래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오히려 3대 전에는 이런 맛이었을 것이라는 점이 이해가 된다. 하지만 '아무도 모방할 수 없는 김밥 맛'이라는 식당 문구는 '아무도 모방하고 싶지 않은 김밥 맛'으로 바꿔야할 것 같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거제도를 나서며 어제 여수 돌산도 처럼 거제도를 빠져나가는 길이 막히지 않을까 우려 했지만 기우에 지나지 않았다. 크게 막힘 없이 통영으로 나와 77번 해안도로를 타고 마산을 지나서 남해고속도로에 진입했다. 우리는 경주로 향하고 있었다.

 

김해, 양산을 거쳐 해가 뉘엇뉘엇 질 무렵 경주에 도착했다. 너무도 유명한 곳이라 고등학교 수학여행 때를 제외하고는 한번도 제대로 와본적이 없었던 경주, 그래서 이번 여행에서는 꼭 한번 들러보고 싶었던 곳이다.

보문단지 호수가에서 저무는 해를 바라보며 잠시 감상에 젖었던 우리는 민생고를 해결하기 위해서 보문단지 입구의 식당촌을 찾았다. 그동안 그토록 먹고 싶었던 삼겹살의 한을 이곳에서 풀기로 하고 식당촌 입구의 한식집에서 삼겹살과 된장찌게를 먹었다.

식사를 마친 후 식당 근처에서 어둠침침한 숲 방향으로 조금 들어가자 뜻밖에도 콘도 스타일의 민박집 아테네가 나타났다. 아파트 경비실 같은 카운터에 가서 빈방있냐고 묻자 주인 같은 아저씨와 아주머니가 나를 쳐다보면서 약간은 들뜬 기분으로 물었다.

"어디서 이름 듣고 찾아오신 거예요? 여기 유명한데.."
"그래요? 귀신 나오나보죠?"

원래는 다인실인데 2인실 요금만 받고 주겠다며 넘겨주는 키를 넙죽 받아들고는 방으로 찾아갔다. 방안은 넓고 깨끗했다. 난방이나 취사도구, 이불, TV, 냉장고, 목욕탕 비품 등 모든 것이 마음에 들었다. 무엇보다도 큼지막한 밥상이 있어서 노트북PC를 올려놓고 사용할 수 있는 점이 좋았다.

다음날 아침, 불국사를 지나 꾸불꾸불한 산길을 달려 석굴암에 오른 나는 유리방 속에 갇혀있는 석굴암을 바라보며 적지 않게 실망했다. 이거야 원.. 쇼윈도우 안으로 마네킹 들여다보는 기분이 아닌가? 세계 문화유산이며 경주의 상징이라할 수 있는 석굴암을 어렵사리 찾아와서 바라봤을 때의 첫 느낌이 허무함이라니... 차라리 근처에 실물 그대로의 복제품이라도 만들어 가까이에서 신라인의 숨결을 느낄 수 있게, 그래서 뿌듯함을 안고 돌아갈 수 있도록 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석굴암에서 감포쪽으로 내려와 31번 도로를 타고 포항으로 향했다.

 

(↑사진 : 이번 여행의 동반자 '익현')

석굴암을 출발한 차가 구룡포를 지나는 동안 차 창밖으로 굵은 빗줄기가 쏱아지고 있었다. 이러다가 사진 한 장 못찍을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앞섰다. 그러나 차가 장기곶에 도착하자 기적적으로 비가 멈추었다. 우리는 언제 다시 쏟아질지 모르는 비를 피하기 위해 차에서 내려 총알 같이 바닷가로 달려갔다.

바닷가에서 포즈를 잡고 몇장의 사진을 찍었다. 지구를 떠받치는 손은 여전히 바닷속과 육지 위에 하나씩 세워져 있었다. 만약 저 조각품이 없었다면 이곳 바다가 얼마나 썰렁했을까하는 생각을 하면서...

바닷가 옆의 등대 박물관은 오늘따라 휴관이었다. 실내로 들어가서 비를 대비하려는 나의 계략은 여지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지난번에도 그렇고 내가 올 때마다 휴관하는 통에 세 번 왔지만 한번도 들어가보지 못했다. 그래서 다음에 다시 와야할 이유가 생겼다.

사진 촬영을 마치고 광장에서 어슬렁거리는데 다시금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마치 휴식 끝, 비 시작~! 이라고 외치듯이 굵은 빗방울이 쏱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광장 한편에 세워진 야외 돔형 공연장 안에서는 얼큰하게 술이오른 어르신 30~40여분이 춤과 노래의 향연을 펼치고 있었다. 20~30년 뒤의 내 모습을 보는 듯 했다. 얼핏 고성방가로 보일 수도 있지만 내가 보기에 이것은 음주가무를 즐기는 한민족의 자연스런 모습이라고 생각된다. 질서라는 이름하에 무조건 금지하기 보다는 건전한 놀이공간을 많이 만들 필요가 있다.

 

포항을 지나 동해안 7번 국도를 달렸 영덕 옆 강구항에 도착했다. 영덕대게로 유명한 곳 답게 항구 앞 길가에는 대게 전문 식당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다. 그리고 수년전 방영되었던 드라마 '그대 그리고 나'의 촬영지임을 알리는 드라마 장면이 커다란 사진으로 세워져있었다. 마을 언덕위에 올라가 항구를 내려다보며 사진을 찍으려고 길을 찾다가 결국 포기한 우리는 여기에 언제 다시 와보겠나 싶은 생각에 큰 마음 먹고 게를 먹기로 했다.

막상 게를 먹겠다고 했지만 애당초 그 비싼 영덕대게를 먹을 생각은 없었다. 일전에 동해에 갔다가 맛을 본 러시아산 대게를 먹을까 하고 식당을 두리번거리다가 주인아주머니의 얘기를 듣고는 홍게를 먹기로 했다. 3마리에 5만원. 러시아산은 이보다 조금 더 비싸고 영덕대게는 그 식당의 경우 한 마리에 4만원~ 8만원 한다고 했다.

시베리아산은 맛이 고소해서 젊은 사람들은 더 좋아한다고 했다. 홍게는 영덕대게에 비해 살이 실하게 차지는 않지만 1년 내내 맛을 볼 수 있다고 한다. 반면 영덕대게는 산란기인 6월부터 10월까지는 잡지 않기 때문에 먹을 수 없다고..

엊그제 연휴기간 동안에는 손님들이 몰려와서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는데 그날은 한가한 터라 주인아주머니께서 직접 게다리를 가위로 먹음직스럽게 잘라주었다. 게살을 다 먹고나자 몸통에는 갖은 재료를 넣어 밥을 비벼서 나왔다. 배가 터질 듯이 불러왔다. 밥을 먹는 와중에도 식당 밖에서는 '핵폐기장 건설 반대'를 외치며 집회가 있음을 알리는 자동차가 이리저리 돌아다니고 있었다.

식사를 마치고 다시 차를 몰아 동해안 7번국도를 달렸다. 해가 어슴프레 질 무렵, 비가 심상치 않게 쏱아져내리고 도로 곳곳에 물이 차올라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해가 완전히 기울어 어두워져 삼척부근에 이르렀을 즈음 안개 자욱한 언덕 위를 오르내리느라 피로가 몰려오고 있었다. 이때 어디선가 홀연히 나타난 한일여객 버스... 오르막길에서의 승용차 추월 묘기와 현란한 내리막길 S자 꺾기를 구사하며 도로를 평정했다고 생각했을 즈음 괭음을 내며 달려든 4륜 구동차의 추월에 의해 선두를 빼앗기는 사태가 발생하고 말았다. 이 후 한동안 쫒고 쫒기는 상황이 지속됐고 이를 지켜보며 웃고 즐기는 사이 어느덧 자동차는 동해 부근에 다다르고 있었다.

 

밤 10시경이 되어서야 추암해수욕장에 도착했다. 이곳에 온 것도 네 번쯤, 다른 바다는 갈 때마다 달라지는데 비해 이곳 추암은 소박한 옛모습 그대로를 간직하고 있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잠시 바닷가를 거닐다가 해변에서 제일 가까운 민박집을 찾아갔다.

간단하게 세수를 하고 이불속에 누워서 컴퓨터로 보다만 드라마 '겨울연가' 후반부를 틀었다. 주인공 남녀가 이별을 앞두고 바다를 찾아가는 장면.. 유심히 드라마를 보던 나는 무릅을 탁~ 하고 쳤다. 바로 저 바다가 이 바다인 것이다. 뿐만 아니라 드라마에서 주인공 남녀가 하루밤을 지낸 민박집이 내가 지금 배를 깔고 누워있는 이 방이었던 것이다. 무슨 대단한 발견이라도 한 듯이 나와 익현은 신기해했다.

다음날 아침, 계속 비가 내린다는 소식에 일출을 보려는 생각은 일찌감치 포기하고 느즈막히 일어났다. 우산을 쓰고 간단히 사진 몇장을 찍은 후에 길을 나섰다.

◈드라마 '겨울연가' 속의 추암

 

7번 국도를 달려 얼마 가지 않아 정동진에 도착했다. 몇차례 와본 곳이지만 오늘처럼 비가 몹시 내리는 날은 처음이었다. 사람들도 별로 없고 비가 내려 오히려 운치가 있을 법도 하건만 너무도 많은 비가 퍼붓다 보니 감상에 젖을 기분이 아니다.

비가 잦아들기를 기다리며 길가 분식집에서 오뎅과 떡볶이를 먹었다. 일단 배를 채우고 난 후 역으로 가서 표를 샀다. 전에는 일반 기차표 처럼 생긴 입장권이라 나름대로 운치가 있었는데 지금은 여느 관광지와 같은 형태의 티켓으로 바뀌었다. 아쉬웠다. 비가 퍼붓는 가운데 익현을 이리저리 세워놓고 사진을 찍었다. 그 사이 기차가 두어번 왔다갔고 계속 쏟아지는 비바람에 해변가로 내려가볼 엄두도 내지 못한 채 근처 까페로 철수하고 말았다.

 

정동진을 출발한 자동차가 영동고속도로 대관령 구간을 지날 즈음 도로는 짙은 안내로 뒤덮였다. 장평 부근에서 고속도로를 빠져나와 42번 국도를 달렸다. 마지막 여행지인 평창 뇌운계곡을 향해 가고 있었다. 비가 계속해서 내렸고 계곡의 비포장도로를 얼마간 지나가고나서야 우리가 찾는 통나무 산장 '아름다운 여행'에 도착할 수 있었다.

산장 앞에 세워진 커다란 까페에 들어가 따뜻한 차를 마시며 창밖으로 쏱아지는 비를 바라보았다. 통나무로 지어진 까페 중앙에는 커다란 벽난로가 놓여져 있었고 천장에는 멋스러운 전등이, 그리고 한쪽 벽은 라이브 무대로 꾸며져 있었다. 주인장 김호중씨가 대학가요제 출신이라는데 전국을 방랑하듯 쏘다니다가 이곳에 정착하게 되었다고 한다. 무척이나 부러운 얘기다. 하루밤 자고 갔으면 하는 생각이 굴뚝같았지만 익현의 마음은 어느덧 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얼마 후 한 잔 얼큰하게 취한 일단의 아저씨 무리들이 몰려들어와 무대를 점령하고 고래고래 소리지르며 트롯의 향연을 펼치는 바람에 우리는 서둘러 자리를 피했다. 카운터의 종업원이 연신 고개를 숙이며 죄송하다고 했다.

그길로 차를 몰아 안산으로 향했다. 나는 안산에서 지하철을 타고 서울로 가고 수원이 집인 익현은 차를 몰고 수원으로 가기로 했다. 차가 용인 부근을 지날 즈음 속도가 현저히 떨어지는 바람에 황급히 갓길에 차를 세웠다. 본네트에서 연기가 치솟았다. 황당한 일이었다. 냉각수를 보충하고 잠시 기다렸지만 시동이 걸리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보험사에 전화를 걸어 렉커차를 불렀다. 우산을 쓰고 자동차 100미터 전방에서 지나가는 차에 경고 신호를 보냈다. 비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었다. 40여분이 지난 후에야 도착한 레커차를 타고 수원으로 왔다. 이번 여행의 대미를 잊을 수 없는 추억으로 장식하고야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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