σ Kim Jae Y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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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환상적인 구름으로 더욱 멋진 곳 캐나다

5월29일, 비행기는 캐나다 밴쿠버를 거쳐 부모님이 계신 캘거리에 도착했다. 우리에게는 동계올림픽으로 알려진 곳.. 이번이 세 번째이지만 최근 몇 년간 와보지 못해 오랜만의 방문이다. 비행기 위에서 내려다본 풍경은 눈 덮인 록키산맥이 끝없이 이어져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밴쿠버 공항에 비행기가 착륙하고 비행기 문 밖에서는 사스 관련 신고서를 접수하고 있었다. 내 신고서를 받아든 심사관은 나를 불러서 캐나다 거주지 연락처를 적으라고 했다. 나는 모른다고 대답했다. 그는 고압적인 자세로 나에게 전화번호를 적으라고 윽박질렀다. 나는 정확한 발음으로 또박또박 얘기했다.

"아이~ 돈~ 노우~~!!"

내가 그 직원과 실랑이를 벌이는 순간 스튜어디스가 황급히 달려와서 그와 얘기를 하더니 나무라듯이 나에게 말했다.

"연락처를 적지 않으면 입국할 수 없답니다!"

나는 더욱더 열받았다.

"안들어가고 말겠소이다".

캐나다로 출발할 때 어느 누구도 내가 머물 곳의 연락처를 모르면 입국할 수 없다는 안내를 한적이 없고 그런 규정을 들어본 일도 없었다. 나는 그 직원에게 이렇게 따졌다.

"당신은 나에게 연락처를 요구할 권리가 없지! 나의 부모님은 캘거리 공항으로 마중나올 것이고 나는 전화번호를 알아야할 이유가 없소이다. 당신이 이만저만해서 협조를 요청한다면 도와주겠지만 이딴식으로 강압적으로 나온다면 받아들일 수 없다네!!"

그러나 불행히도 그 직원이 한국말을 모르는 탓에 내 말뜻을 제대로 이해했을지는 의문이다. 결국 스튜어디스의 중재로 전화번호 대신 부모님 성함을 적어주고는 비행기를 나왔다. 애시당초 그가 이런식으로 얘기했다면 나는 순순히 응했을 것이다. "이것은 당신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만약 지금 타고온 비행기 내에 누군가 사스 환자가 있었다면 그 사실을 당신에게 알려주어야만 한다. 그래야 당신과 당신 가족이 안전해질 것이다." 그러나 처음부터 나를 죄인 취급한 그에게 심사가 뒤틀려 협조할 생각이 발까락의 때 만큼도 없었다.

캘거리 국내선으로 갈아타는 동안 철저해진 보안검색으로 내 배낭은 실밥 하나까지 완전히 분해되었다. 내가 테러리스트 처럼 보였단 말인가.. 배낭을 분해하던 보안요원은 한건 잡은 표정으로 손똡깎기를 주워들었다. 그러나 손똡깎기에는 손똡 다듬는 칼(그것을 칼이라고 부른다면)이 달려있지 않았다. 만약 생각하기도 싫지만 그것이 달려있었더라면 나의 손똡때가 묻은 손똡깎기는 그 자리에서 나와 영원히 이별을 고해야했을지도 모른다.

한국을 떠날 때 배낭속에 들어갈 물건들의 부피와 무게 그리고 생김새를 감안하여 최적의 구성으로 차곡차곡 쌓아놓은 것들이 공항 검색대에서 순식간에 해체된 후 주섬주섬 다시 챙겨넣은 배낭은 맹꽁이 배 마냥 뽈록해졌을 뿐만 아니라 이리저리 삐죽삐죽 튀어나와 우스꽝스런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나마 내가 한국인이었기에 망정이지 아랍인이었다면 아마도 발가벗겨져 공중에 매달려서 조사받았을런지도 모를 일이다. 어 휴~...

 

캘거리에 온 후 며칠간은 시차로 인해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하고 새벽에 깨곤 했다. 새벽녘에 창문밖을 내다보면 멀리 지평선 너머로 어슴프레하게 해가 떠오르곤 했는데 그 모습이 아름다워 카메라에 담았다.

며칠간 집안에서 비몽사몽 졸다가..자다가...먹다가...를 반복하던 나는 어느날 정신을 차리고 시내구경을 나왔다. 요금은 캐나다 1불, 거의 지상으로 다니는 전철은 자판기에서 표를 구입하고 그 자리에서 기계에 넣고 개표를 한 후 역무원도 없는 개찰구를 통과하여 플랫폼으로 나가도록 되어있었다. 그나마 시내의 경우 지상에 있는 전철역은 따로 역사가 있는 것이 아니고 길거리에 버스정류장 처럼 꾸며져 있었다. 표 검사하는 사람이 없는 대신 연중행사로 이루어지는 불시 검사에 걸리면 원래 요금의 수십배를 물린다고 한다.

전철을 타고 시내 외곽에 위치한 캘거리 대학에서 내려 캠퍼스를 둘러본 후 왔던 방향으로 다시 전철을 타다가 걷다가 하면서 시내까지 왔다. 시내 외곽을 흐르는 강물은 초록빛으로 맑았는데 강가에서는 자전거를 타거나 달리기를 하는 사람들의 평화로운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시내 중심의 캘거리 타워에서 외곽으로 이어지는 스카이라인은 잘 정돈된 모습이었고 파란 하늘과 구름들, 외곽을 흐르는 강줄기와 푸른 숲이 조화를 이루어 한폭의 그림을 연상시켰다.

시내 구경을 마치고 4시반 경, 집으로 돌아가는 전차를 기다리는데 일찌감치 퇴근하려는 사람들로 붐볐다. 1불짜리 동전이 있어야 전철표를 살 수 있지만 마땅히 동전 바꿀 곳을 찾지 못한 나는 잠시 말설이다가 그냥 전철에 올랐다. 만약 역무원에게 걸리면 이렇게 얘기하리라 다짐하면서..

"아리가또 고자이마스.. 쓰미마생~, 오갱기 데스까...나 일본인 데스...헤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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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에 온지 사나흘이 지난 후, 몸에 좀이 쑤시던 차에 형이 차를 몰고 나타났다. 사실 여기서는 누구나 차를 몰고 나타나지만.. 아무튼 어린 조카 둘과 더불어 드라이브 삼아 캘거리 서쪽으로 달린 우리는 엘보우 폭포라는 곳으로 갔다.

사실 폭포라기 보다는 커다란 시냇가에 낙차 큰 계곡이 있었다고 해야 옳겠지만 오랜만에 시원한 물줄기를 볼 수 있어 상쾌했다. 이곳의 강물이나 호수 물은 모두 색깔이 초록색이나 하늘색을 띄는데 그것은 광물질을 많이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철분도 많다면 몸에 좋은 것이 아니냐고 생각했지만 물을 그대로 마시면 배탈이 난다는 얘기..

돌아오는 길에도 길가의 어느 이름모를 호수에 들렀는데 물빛이 신비롭고 그 위를 떠다니는 물새가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는 모습이 서울 시내의 살찐 비둘기를 보는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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캘거리에서 일주일여를 지낼 무렵, 이웃한 도시 에드먼톤에 사는 작은누나 식구가 찾아왔다. 오랜만에 한국에 있는 큰누나를 제외한 모든 식구가 한자리에 모여 오손도손 얘기꽃을 피우며 정성껏 준비한 만찬을 들었다.

다음날 오후, 캘거리 시내에서 딤섬요리를 파는 중국음식점에서 점심식사를 한 후 에드먼톤으로 돌아가는 작은누나 가족에 뭍어서 나도 에드먼톤으로 달렸다. 캘거리에서 북쪽으로 3시간 거리에 위치한 에드먼톤으로 향하는 동안 나는 하늘의 뭉게구름을 정신없이 쳐다보았다. 이곳 지형이 해발고도가 높아 구름이 낮게 깔리는데다가 비행기 위에서나 보던 입체적인 구름들이 제각각 기기묘묘한 형태를 띄고 있었다. 더군다나 사방이 탁 트여 하늘이 무척 크게 보였기에 마치 아이멕스 영화를 보는 듯 했다. 나중에 형수에게 이곳 구름에 대해 얘기했더니 역시나 매우 아름답다고 맞장구를 쳤다.

중간에 우리는 Sandy Cove라는 호수가에 들렀다. 몇 년전 이곳에 거대한 회오리가 강타하는 바람에 많은 인명피해가 났다고 했다. 호수가에는 작은 콘도나 캠핑카가 세워져있어 주말이면 이곳에 와서 쉬었다가 돌아가는 사람들이 많다고 했다. 캐나다인들의 여가생활은 주로 산과 들을 찾아 레저활동을 하는 것이라고 하는데 그래서 그런지 레저용품들이 상당히 전문화되고 세밀한 것까지 만들어져 있었다.

에드먼톤에 도착한 다음날 나는 조카의 안내를 받아 Fort Edmonton Park에 갔다. 1800년대 후반과 1900년대 초반의 캐나다 거리를 재현해 놓은 이른바 민속촌이라할 수 있었다. 그곳에서 우연히 조카의 친구를 만났는데 자동차 코너에서 일하고 있었다. 덕분에 우리는 아주 오래된 자동차도 공짜로 타보았고 손으로 돌려서 시동을 거는 자동차가 눈앞에서 굴러가는 모습도 비디오에 담을 수 있었다.

다음날 캐나다에서 제일 크다는 West Edmonton Mall에 갔다. 오래 전에 잠실 롯데월드를 만들기 전에 한국에서 사람들이 와서 견학을 하고 갔다는 곳이다. 어제 오늘 에드먼톤에 볼일이 있었던 형을 이곳에서 만나 함께 캘거리로 돌아가는 길에 몇몇 관광지를 돌아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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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먼톤에서 서쪽으로 달려 자스퍼까지 간 후 하룻밤을 묵고 다음날 남쪽으로 밴프까지 간 다음 캘거리로 돌아올 계획이었다. 어드먼톤에서 4시간여를 달려 자스퍼 국립공원 내에 있는 Hot Springs에 도착했다. 이른바 야외 노천 온천탕에서 한시간 남짓 휴식을 취한 후 다시 출발하여 해가 뉘엇뉘엇 질 무렵에야 자스퍼 시내에 도착했다.

숙소를 알아보기 위해 이리저리 돌아다녔는데 보통 콘도 스타일로 보이는 호텔들이 캐나다 달러로 150불이 넘었다. 결국 시내 길가에 세워져있는 민박집을 골라 60불에 들어갔다. 일반 주택을 개조하여 화장실/샤워장은 공동 사용이었으나 깔끔한 방안에 침대 두 개, 전자렌지, 다리미, 커피포트에 커피까지 준비되어있어 저렴한 가격에 하루밤 묵고가기에는 더없이 좋았다.

다음날 아침 일찍 일어나 시내를 돌아본 후에 길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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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스퍼를 출발한지 30여분 후에 아사바스카 폭포에 도착했다. 아직 눈이 채 녹지 않은 설산을 배경으로 계곡 밑으로 쏱아져내리는 웅장한 폭포의 강렬한 힘을 느낄 수 있었다. 폭포 한켠 벤치 위에는 2002년 6월 9일, 21살의 젊은 나이에 이곳 폭포에서 하이킹 도중 사망한 Roger Raymond Wilgenbusch를 추모하는 꽃과 사진이 놓여져 있어 보는이로 하여금 마음을 숙연하게 했다.

아사바스카 폭포에서 93번 도로를 타고 남쪽으로 한시간여를 달리자 빙하지대인 아이스 필드가 나타났다. 먼저 빙하 건너편에 세워진 매표소 건물에서 버스를 타고 빙하 근처까지 간 후에 거대한 바퀴가 6개나 달린 설상차로 갈아타고 뒤뚱뒤뚱 빙하 앞에 도착했다. 매년 조금씩 녹아서 빙하지대가 뒤로 후퇴한다는 아이스 필드에 우뚝 서자 불현듯 조용필의 노래 킬리만자로의 표범이 떠올랐다.

"먹이를 찾아 산기숡을 어슬렁거리는 하이에나를 본 일이 있는가? (엄따~) 짐승의 썩은 고기만을 찾아다니는 산기슭의 하이에나.. 나는 하이에나가 아니라 표범이고 싶다. 산정 높이 올라가 굶어서 얼어죽는 눈덮인 킬리만자로의 그 표범이고 싶다..(아우~~)"

에드먼톤을 떠나 자스퍼를 거쳐 뱀프로 향하는 도중 눈덮힌 거대한 록키산맥의 위용과 군데군데 비취빛 호수 그리고 폭포가 시종일관 눈길을 사로잡았다. 자전거를 타고 하이킹하는 사람들이 눈에띄었고 간혹 사슴이나 아기곰도 볼 수 있었는데 지나가던 사람들이 길가에 차를 세워놓고 사진을 찍느라 여념이 없었다. 하늘이 우중충하여 구름이 많이 끼더니 아이스필드를 지나서는 본격적으로 비가내렸다. (아래 사진은 Mount Fryatt 앞의 호수와 Waterfowl 호수 그리고 밴프의 오래된 호수.)

 

아이스 필드에서 세시간 정도 달려 그 유명한 루이스 호수에 도착했다. 비가 오락가락하고 구름이 많이 껴서 제대로 볼 수는 없었지만 호수는 평온하고 환상적인 물빛을 발하고 있었다. 하지만 루이스 호수는 카메라에 담아놓고 보면 상당히 단조롭게 보인다. 아래는 호수, 위는 쌍봉우리 산, 그사이로 구름이 끼어 잘 보이지 않고... 그래서 관광안내서나 그림옆서에 나온 사진을 보면 꽃이나 나무 등 다른 사물을 집어넣어 사진을 찍은 경우가 많았다. 비가 다시 쏱아지는 바람에 서둘러 차에 올랐는데 마음 한구석에는 아쉬움이 남았다.

루이스 호수를 나오다가 두명의 젊은 여행객을 태웠다. 그들은 모레인 호수로 간다고 했다. 우리도 모레인 호수로 간다. 루이스 호수에서 나와서 남쪽 방향으로 난 산길을 따라 10여km를 가자 거대한 산봉우리가 병풍처럼 둘러쳐진 사이로 아름다운 모레인 호수가 나타났다. 루이스 호수에 가려서 사람들이 많이 찾지 않는다는 모레인 호수는 그러나 또다른 매력을 갖고 있는 남성적인 호수였다.

호수 입구에서 좌측으로난 길을 따라 10여분을 올라가면 돌무데기 같은 자그마한 산이 나타나는데 이곳에서 내려다본 호수는 호쾌하기가 이를데 없었다. 힘차게 부는 맞바람으로 인해 뒤로 날라갈 듯한 지경이었고 호수 건너편을 보면 얼핏 지난 월드컵 때 스탠드에 펼쳐졌던 대형 태극기 모양이 연상되는데 나만 그렇게 보이는 것인지...

 

 

여행은 끝없는 방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