σ Kim Jae Y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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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빙설제의 도시 하얼빈

 

12월25일 저녁 6시20분, 하얼빈행 야간 열차가 북경역을  출발했다. 일행은 치욱과 그의 친구 그리고 나 이렇게  세명.. 일전에 내몽고와 대련 여행도 함께한 때문에  우리는 이미 서로에게 익숙해져있다.

하얼빈 겨울날씨가 엄청 추울것이라는 얘기때문에 진작 부터 만반의 준비를 했다. 학교 근처 시장에서 치욱이  75위안을 주고 튼튼한 겨울용 방한화를 사왔다. 옷도 든든하게 입었다. 아래에는 팬티 위로 남성용 방한 스타킹 , 그 위로 트레이닝복을 입고 그 위에 여행용 방한 바지 를 입었다. 양말도 두켤레, 위에는 런닝셔츠, 내복 비슷 하게 생긴 긴팔 티셔츠, 그 위로 잠바와 겨울 외투를 껴입었다. 얼굴에는 마스크를 썼는데 사스가 재발하면 사용하려고 한국에서 사왔던 마스크이다. 머리에는 며칠전 왕푸징에 갔을 때 유서 깊은 모자집에서 구입한 빵모자와 겨울 외투에 붙어있는 모자를 두겹으로 뒤집어썼다. 물론 장갑도 두겹, 출발 당일날 슈퍼에서 12위안에 구입한 면장갑 위로 대련 여행 후 치욱이 선물한 방한 장갑을 꼈다. 이정도면 하얼빈의 추위도 견뎌낼만 하다는 자신감이 들었는데 문제는 이런 복장으로 북경을 출발하려니 몸에서 땀이 흐를 지경이었다.

저녁 6시20분에 북경을 출발한 기차는 밤새 하얼빈을 향해 달렸다. 새벽녘에 잠에서 깨어 차창 밖을 내다보았다. 열차는 끝없이 펼쳐진 설원을 달리고 있었다. 아침 7시, 기차가 하얼빈 역에 도착했다. 역무원들의 복장에서부터 이곳의 추위가 예사롭지 않을 것이라는 예감이 들게 했다. 안중근 의사가 거사를 벌인 곳으로 유명한 하얼빈역 그러나 지금은 이곳 어디에도 역사의 흔적을 찾아볼 수는 없다.

 

 

역 앞에서 택시를 타고 숙소로 갔다. 기본요금 8위엔으로 갈 수 있는 가까운 거리, 숙소는 하얼빈의 이름난 보행자 거리인 중앙대로 근처에 있었다. 얼마전에 문을 연 한국인을 위한 게스트하우스는 저렴한 가격에 묵을 수 있어서 우리 같은 여행객에게는 안성맞춤이었다. 하루 숙박비 50위안에 아침식사 제공, 빙설제 기간에는 65위안을 받았다.

도착 첫날 간단한 아침식사 후에 짐을 챙겨서 길을 나섰다. 숙소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에 위치한 중앙대로로 갔다. 이른바 차없는 거리, 양 옆으로 러시아풍의 건물들이 늘어서있고 상점들로 가득한 거리 곳곳에는 얼음으로 조작한 장식들이 들어서있었다. 다행이 날씨는 생각보다 춥지 않아서 영하 10도 정도였는데 이정도 기온이면 이곳 사람들은 봄날씨라고 한다고 했다. 더군다나 숙소 앞 노점에서 2위안을 주고 구입한 털로 만든 신발 깔창 덕분에 추위가 한결 덜했다.

중앙대로 끝부분에서 오른쪽으로 길을 돌려서 10여분을 가니 자오린 공원이 나왔다. 10위안을 주고 들어간 공원 내부에는 크고 작은 얼음 조각들로 가득차 있었다. 공원 한쪽에서는 학생들로 보이는 젊은이들이 얼음을 다듬고 있었다. 정신 없이 사진을 찍고있을 때 돌연 카메라가 작동을 멈췄다. 추위 때문이었다. 이곳 사람들이 봄날씨라고 얘기하는 이 정도 추위에 카메라가 작동을 멈추다니.. 정말 추울 때는 어떻게 사진을 찍는다는 말인가? 디지털 카메라의 밧데리는 새로 갈아 넣자마자 방전 표시가 떴다. 기가막힐 노릇이다. 하얼빈에 온 후로 가장 충격적인 일은 밧데리 충전기를 가져오지 않은 사실이다. 충전기가 2개였지만 한개는 이미 기차 안에서 거의 다 써버렸고 충전기가 없다는 사실을 발견한 후로는 남은 한개의 밧데리로 그야말로 아끼고 아껴서 찍어야했다. 더군다나 추운 곳에서는 평소보다 방전이 두배나 빨리 된다는 얘기가 있다. 다행스러운 것은 그나마 필름카메라가 있다는 것..

자오린 공원의 얼음 장식은 멋지기는 했지만 규모가 생각보다 크지는 않았다. 나중에 밤에 다시 찾아오기로 하고 공원을 나선 우리는 근처에 있는 소피아 성당을 찾아갔다. 거대한 돔형 구조의 러시아 정교회 건물로 규모도 컸지만 그 모양이 다른 곳에서는 여지껏 보지 못한 독특한 형태였다. 디지털 카메라를 꺼내서 두장을 찍었다. 아까운 밧데리..

추운 곳에서는 금새 피로를 느끼는가보다. 새벽에 도착해서 돌아다닌 우리는 소피아 성당 근처에서 점심 식사를 마친 후 다시 숙소로 돌아와 쉬었다. 5시반 경 다시 숙소를 나선 우리는 중앙대로를 걸었다. 건물마다 조명을 켜놓아 아름답기 그지없는 거리는 사람들로 가득차 있었다. 어느 상점에서는 쇼룸 안에 학생들이 늘어서서 크리스마스 캐롤을 합창하고 있었다. 거리 곳곳에서 화려한 불꽃을 뿜어대는 폭죽이 떠졌다. 간혹 폭탄소리와도 같은 굉음이 진동했지만 행인들은 놀라기는 커녕 즐거워하는 표정이다. 폭죽이 귀신을 쫓아버리고 복을 가져다 준다고 믿기 때문일 것이다.

중앙대로를 지나 소피아 성당으로 갔지만 너무 늦은 시각이었기 때문일까.. 성당은 불을 밝히고 있지 않았다. 약간은 실망한 기분으로 숙소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에 가게에서 산 하얼빈 맥주를 한잔 마시고 잠이 들었다.

 

 

 

둘째날 아침, 아침식사를 마친 일행은 하얼빈 역 앞으로 갔다. 역사 서쪽 구석에서 343번 소형 버스에 올라탔다. 1인당 2위안. 차창은 매서운 추위를 느끼게 하듯이 온통 성애가 가득 끼었다. 버스에 오른지 30여분이 지났을까? 사람들을 가득 태운 후에야 버스는 출발했다. 버스는 남쪽으로 달리기를 40여분, 시내를 벗어난 후에야 731부대 유적지에 도착했다. 1939년 일본군이 창설한 생화학 실험기지인 731부대는 입구 부터가 예사롭지 않은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무려 4천여명의 사람들이 실험대상으로 죽어갔고 그 중에는 윤동주 시인도 포함되어있다고 한다. 지금은 본관 건물과 화장터 등 일부 유적만이 남아서 당시의 처참한 상황을 증언해주고 있을 뿐.. 전시관을 둘러본 우리의 마음은 숙연해졌다. 수많은 증거와 증인들의 생생한 증언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이 부대의 존재 자체를 부인하는 일본의 우익 세력들은 소인배들에 불과하다. 이것이 바로 일본이 세계의 리더가 되서는 안되는 이유이다. 전쟁이 끝나고 이들로부터 실험 자료를 인도받는 조건으로 이들의 죄상을 면제해준  미국의 태도 또한 시정 잡배의 그것과 다를 바 없다. 도둑과 장물아비의 관계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것.. 순간의 국익을 위해 정도를 짓밟는 행위가 역사적으로 어떤 댓가를 치루게 될지 다시금 생각하게되는 시간이었다. 가슴 속에서 뭉클한 것이 치밀어 오른다.

유적지 앞 식당에서 간단하게 점심식사를 마쳤다. 닭고기 국물의 국수가 3위안, 위에 닭고기가 얹어진 국수가 6위안, 저렴한 가격에 담백한 국물맛을 맛볼 수 있었다. 식당 근처 버스정류장에서 338번 버스에 올랐다. 일반 버스라 아침에 탄 버스보다  크기도 크고 좌석도 넓었는데 1.5위엔이었다. 맨 뒷자리에 앉았다. 옆에 방금 구입한 듯한 가전제품 박스를 품에 안고있는 중국남자가 말을 걸어왔다. 이사람은 내가 한국인이라고 하자 쉬운말로 얘기하려고 애쓰며 한국 전자제품이 최고라고 치켜세웠다. 나역시 중국 제품이 전 세계적으로 깔려있지 않은 곳이 없다고 말하면서 최근 중국이 대단한 발전을 하고있다고 화답했다. 내가 현대자동차에 근무하며 현재 북경에서 공부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공장 근로자의 임금이 높으냐, 부서장 월급이 얼마냐, 공장에 로봇이 많으냐 등등 이런 저런 얘기를 물었다. 나역시 몇가지 간단한 질문을 했는데 그의 대답에 따르면 하얼빈의 겨울은 12월부터 이듬해 5월까지이며 여름에는 30도 가까이 올라가는 기간이 일주일 정도 된다고 했다. 이곳에는 특별한 특산물이 없고 하얼빈 여자가 얘쁘다는 얘기도 했다. 어느덧 버스는 하얼빈 역에 도착하였고 서로가 만나게되어 반가웠다는 인사를 나누고는 헤어졌다.

버스에서 내려 숙소로 돌아오는 택시를 잡으려고 하는데 호객하던 택시기사는 30위안을 불렀다. 우리를 어설픈 외국인으로 보았던 모양이다. 어이없다는 웃음을 지어보이고는 이내 다른 택시를 타고 숙소로 돌아왔다. 요금 9위안. 숙소에서 두어시간 휴식을 취한 후에 5시반에 다시 나왔다. 4시가되면 벌써 어둑어둑해지니까 5시반이면 이미 어두운 밤이다.

 

 

 

숙소 앞에서 택시를 타고 태양도로 갔다. 17위엔. 어제 갔던 자오린 공원보다 훨씬 큰 규모의 빙설제가 태양도에서 열린다는 얘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택시에서 내려 빙설제 입장권을 구입했다. 일반 80위안, 학생 40위안. 학생증을 5위안에 빌려달라는 사람이 있다고 치욱이 얘기했다. 웬지 느낌이 이상했다. 이렇게 돈을 쉽게 벌리가 없는데.. 아니나 다를까 매표소에서는 학생증 얼굴도 확인하지 않더니 표받는 입구에서는 일일이 학생증 사진을 대조해보고 있었다. 그럼 그렇지, 세상이 그렇게 만만치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빙설제 행사장에 들어서는 순간 거대한 규모의 얼음과 눈으로 만든 건축물, 조각들, 그리고 형형색색의 조명으로 휘황잔란한 분위기에 압도되어 상당한 흥분이 느껴졌다. 동화에 나올법한 유럽식 성도 있었고 커다란 교회당과 불상, 광저우 위에시우 공원에서 보았던 다섯 마리 양의 조각상 우양스샹도 있었다. 그리고 중앙에는 북경에 있는 천단공원 건물이 얼음으로 만들어져있었다. 천단공원 뒷편에는 눈을 다져서 만든 거대한 호랑이 조각이 있었는데 바로 대련의 노호탄에서 보았던 원래 조각보다 훨씬 큰 규모였다. 도데체 저런 거대한 규모의 조각이 어떻게 가능한지가 놀랄 다름이었다. 행사장 맨 뒷편에는 수천장의 얼음덩어리로 쌓아 만들었을 법한 커다란 전망대가 있었다. 손잡이를 붙들고 간신히 전망대에 오르자 행사장이 한눈에 들어왔다. 전망대 윗편에는 삼성전자 광고 플랭카드가 내걸려 있었다. 독사 같은 놈덜.. 나는 체질적으로 삼성의 문화가 맞지 않지만 기회를 포착하는 능력 만큼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숙소 근처 한국음식점에 들어갔다. 다소 늦은 시간이라 문을 들어서면서 망서렸는데 식당 안 카운터에 앉아있던 종업원이 나를 쳐다보고도 외면했다. 기분이 무척 나빴다. 일행이 식당 안으로 들어섰으나 종업원들 반응이 전혀 없었다. 조심스럽게 물어보았다.

"영업 끝났나요?"
"아니요"

젠장.. 자리를 잡고 앉아서 육계장을 시켜먹었다. 맛이 있었다. 기분상으로는 욕을 한바가지 해주고 나오고 싶었으나 맛있게 먹고나니 기분이 좀 풀렸다. 월급제라 그런가? 아니면 성과급이 없어서 그런 것일까? 손님이 오는 것을 달가워 하지 않는 종업원들의 태도가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

세째날 아침은 어느 정도 시간의 여유가 있어 아침에 늑장을 부릴 수 있었다. 아침식사를 마치고 전날 찍은 사진들을 정리하며 쉬다가 오전 11시 경에 짐을 숙소에 맡겨놓고 길을 나섰다. 숙소 근처 중국식 라면 식당에서 면으로 간단히 이른 점심을 먹고는 중앙대로를 걸었다. 상점들을 들어가보기도 하고 기념품을 한두개 사기도 했다.

중앙대로가 끝나는 부분에는 기념탑이 세워져있었는데 그곳이 스타린 공원이었다. 공원은 송화강을 따라서 서쪽으로 길게 늘어서있고 곳곳에 얼음 조각들이 장식되어있었다. 강가 얼음 위에서는 썰매를 타는 아이들은 물론이고 심지어 마차까지 달리고 있어 강이 얼마나 두껍게 얼었는지 알 수 있었다. 빙설제에 필요한 얼음들은 모두 송화강에서 잘라서 운반해 사용한다고 하는데 얼음 두께가 1미터에 달한다고 했다.

강가를 따라 30여분을 걸어가니 강을 가로질러 건너갈 수 있는 케이블카 승강장이 나왔다. 20위안을 내고 케이블카에 올랐다. 한강보다 약간 길어 보이는 송화강 폭을 가로질러 10분을 조금 넘게 걸려서야 건너편 강가에 도착했다. 강 한가운데 공중에 떠있는 기분은 뭐랄까.. 헬리콥타를 타고 강을 내려다보는 기분이라고할 수 있었다. 강 건너편에서 조금 걸어가자 태양도 공원이 나왔다. 이곳에도 역시 눈으로 만든 수 많은 작품들이 설치되어있었다. 그 넓은 공원 전체가 전시장이라고할 수 있을 것이다. 얼음은 조각을 한다고 치고 눈으로 만든 조각품들은 도데체 어떻게 만드는 것일까? 몸시도 궁금했든데 이곳에서 제작 과정을 살펴볼 수 있었다. 커다란 나무판자로 상자를 만들고 속에 눈을 다져넣은 후 나무판자를 벗겨내고 조각에 들어가는 것인데 놀라운 것은 손으로 눈을 퍼다넣으면서 일일이 발로 밟으며 눈을 다지는 것이었다. 비교적 적은 규모의 조각품은 이렇게 만든다고 치고 10여층 높이에 길이가 50미터가 넘어보이는 거대한 조각물은 어떻게 만든 것인지 도무지 의문이 풀리지 않았다.

해가 뉘엇뉘엇 질 무렵 태양도 공원을 나와 숙소 근처로 돌아왔다. 이른 저녁식사는 중앙대로 근처에 있다는 북한 음식점 '대동강'을 찾아갔다. 문 밖에서 바라본 음식점은 조명이 어둠침침한 것이 별로 마음이 내키지 않는 분위기였다. 조심스레 문을 열고 들어가자 종업원이 반갑게 맞이했다.

자리를 잡고 앉아서 메뉴판을 뒤적였다. 아직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식당 안에는 손님이 별로 없었다. 평양온면과 배추김치를 시켰다. 벽에는 북한 특유의 화풍으로 그린 풍경화와 미인도가 걸려있었고 식당 구석에 있는 TV에서는 북한 노래가 노래방 스타일의 배경화면과 함께 흘러나오고 있었다.

"먼 훗날 자서전에 오늘을 적을 때, 양심에 후회없을 그 길만 걸으리..♬"

조금은 낮익은 듯한 곡조의 노래이길래 종업원에게 물어보았다.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여종업원은 반색을 하며 설명해주었다. 북한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영화가 있고 그 다음 영화가 '곡절 많은 운명'인데 이 노래가 바로 그 영화 주제가로 제목은 '이 내마음 한송이 들꽃이 되어'라고 설명했다.

식사를 하는 사이 옆좌석에 북한 사람으로 보이는 손님이 두명 들어왔다. 자리에 앉으며 힐끗 우리를 쳐다보는 폼이 '왠 남조선 인민들이 찾아왔나?'라고 생각하는 듯 했다.

식사를 마치고 종업원에게 정중히 물어보았다.

"저.. 실례가 안된다면 사진 한장 찍어도 되겠습니까?"

수줍은 표정을 지으며 어쩔줄 몰라하는 사이에 잽싸게 카메라를 들고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는 우리 일행과 함께 두장의 사진을 더 찍었다. 사진 찍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을 줄 알았는데 의외라는 생각이 들었다.

식당 문을 나설 때 문밖까지 나와서 마중하는 종업원을 보며 왠지 가슴이 따뜻해져오는 느낌이 들었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 중국에서 조선족을 만났을 때와는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저들의 태도가 가식이라고 말하기에는 어려운 그 무엇이 있었다. 패스트푸드점에서 습관적으로 건네는 종업원의 인사와도 달랐고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무릅끓고 앉아 주문받으며 메뉴얼 대로 행하는 친절과도 달랐다. 어느정도 인생을 살아온 사람들은 안다. 상대방이 다른 목적을 갖고 미소지으며 다가올 때와 마음속에서 우러나와 베푸는 친절이 어떻게 다른지를..

숙소로 돌아와 잠시 쉬었다가 맡겨놓은 짐을 찾아들고 하얼빈 역으로 갔다. 침대칸에 누워서 책을 보다가 치욱이 건네준 하얼빈 백주를 두잔 마시고는 곧바로 쓰러져 잤다. 하얼빈에서 가장 도수가 낮은 술을 샀다고 하는데 45도 짜리였다. 저녁 8시반에 출발한 기차는 다음날 아침 9시에 북경역에 도착했다. 기차역을 나서자 친절한 미소를 지으며 아마도 자가용 택시기사인 듯한 사람이 다가왔다. 학교까지 얼마냐고 물어보자 100위안이란다. "도둑놈~" 소리가 목구멍에까지 올라왔다. 30위안도 안나오는 거리를 100위안이나 달라고 하다니.. 역시 다른 목적으로 미소지으며 다가서는 사람은 달랐다.

하얼빈.. 책에서만 보아왔던 그곳의 화려한 빙설제도 기억에 남지만 내 가슴속에 오래도록 남아있을 다른 무엇이 있었다.

2003년 12월 29일

 

 

여행은 끝없는 방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