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단을 베고 누운땅 철원




'95년4월9일 다녀온 철원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철원의 개요
철원땅의 역사
철원땅은 어디에 있는가
철원땅의 이야기
빨간 모자를 쓰자
유적지




철원의 개요

철원은 예로부터 철이 많이 난다고 하여 지어진 이름이라 합니다. 더우기 한반도의 중심부에 위치한 지리적인 특색으로 선사시대부터 근현대사에 이르는 역사가 지나간 자욱을 오랫동안 지닌 곳이기도 합니다.

그 옛날 철기문화가 일찌기 발달하여 당시 선진기술을 꽃피운 지역이였으며 후삼국시대에는 가장 강력한 호족세력으로 등장한 궁예가 웅비의 꿈을 키웠던 근거가 된 곳이기도 하였습니다. 한탄강의 상류지역으로 수려한 풍치를 자랑하여 조선시대에는 호걸 임꺽정이 웅거하였던 곳이기도 합니다.

분단 이전에는 지리적인 요충지로서 50만이상의 인구를 가진 큰 도시였지만 지금은 읍으로 변하여 역사의 자취를 고스란히 간직한채 찬란했던 옛 영화를 꿈꾸는 철원에서 역사의 향기를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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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원땅의 역사

철원은 한반도의 중앙부에 위치한 땅으로 휴전선의 한복판에 자리잡고 있으며 오랜 역사와 전통 그리고 유물을 품고 있는 유서 깊은 고장이다.

철원이 역사의 기록에서 등장하는 것은 고구려의 철원군이라는 지명에서부터 였고 삼국통일 이후에는 철성군으로 개칭되었다. 궁예가 후고구려·태봉을 건국하였을 때 철원은 14년간 도읍으로서의 영광을 누리기도 하였다.

골이 좁고 산이 높은 강원도에서 가장 넓은 평야를 가지고 있는 땅 철원은 한말 의병운동이 활발하게 벌어졌고, 일제하에서도 활발한 저항운동이 벌어졌다. 해방과 함께 철원지방은 3·8선 이북의 땅이 되었다. 지금도 철원가는 국도를 따라가다 보면 3·8선 표시가 있고 근처에는 '3·선 휴게소'라는 이름의 휴게소를 지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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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원땅은 어디에 있는가

원래 철원은 현재 민통선 안에 있다. 철의삼각지 전망대를 둘러보고 돌아나오다 보면 철원역과 노동당사가 있는데 두 건물의 사이가 철원의 중심지였다. 이 지역이 안보관광지로 지정되어 신고의 절차를 거치고 외지인이 출입할 수 있게 된 것은 88년 무렵이다. 고향을 떠난 후 그리움 때문에 철원주변지역에 자주 발걸음을 했던 실향민들도 이제 자신의 고향을 밟아 볼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정작 그들이 다시 보는 철원은 그토록 오래 가슴속에 간직했던 기억속의 철원이 아니다.

민통선밖 가까이 있는 구철원은 철원읍 화지리이다. 난리통에 원래 철원이 폐허가 되고 민통선에 묶여 출입이 통제되자 가까운 이곳에 철원의 기능이 옮겨진 것이다. 전쟁전까지는 작은 마을에 지나지 않았던 철원군의 남쪽 끄트머리 말갈읍 지포리에 철원군의 행정기관이 옮겨졌다. 이곳이 신철원이라는 정식 명칭을 차지하여 화지리의 철원은 이 신철원과 구별하기 위해 보통 구철원이라고 불리워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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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원땅의 이야기

오랜 역사를 지닌 철원은 역사 만큼이나 많은 사연과 설화를 가지고 있다. 삼부연 폭포는 용이된 이무기 세마리가 기암절벽을 뚫고 승천하면서 생긴 큰 바위구멍 세계에 물이 고여 연못이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용이 되지 못한 한마리의 이무기가 심술을 부려 비를 못오게 하므로 이때부터 이곳에서 기우제를 지냈다고 한다.

철원의 젖줄 한탄강은 궁예가 왕건에 쫓기어 평강쪽으로 달아나다 이 강을 건너면서 한탄을 하여서 한탄강이 되었다는 별명도 있다. 한탄강이 빚어낸 최대의 절경지인 고석정은 임꺽정과 관련된 이야기들을 품고 휘돌아가는 한탄강을 바라보고 있다.

민통선 안의 철의삼각지 전망대에 들어서면 철원군에서 파견된 공무원이 관람객을 모아놓고 능숙하게 지휘봉으로 이곳 저곳을 가리키며 명칭과 유래를 가르쳐 준다. 철원·평강·김화를 잇는 철의 삼각지는 6·25당시 미8군 사령관이었던 제임스 A 팸프리트 대장이 "적이 전선의 생명선으로 사수하려는 이 철의삼각지를 무너뜨려야 한다."고 말함으로써 생겨난 명칭이다. 백마고지는 미군 비행사가 포격때문에 흰 등껍질을 드러낸 이 고지를 하늘에서 내려다보고 마치 백마의 모습과 같다고 하여 붙인 이름이다.

아이스크림고지 역시 포격에 허물어지고 흘러내린 능선의 모습을 보고 미군 병사가 붙인 이름이다. 낙타등 모양과 같다고하여 생긴 낙타고지 역시 비유의 대상으로 이국적인 것으로 우리내 정서가 배어 있지 않은 지명들은 해방이후 우리 민족의 처지와 역사를 반영하고 있는 것 같아서 못내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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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모자를 쓰자

민통선으로 들어가는 검문소 앞마당에는 민통선안을 드나들면서 농사를 짓는 주민들의 출입증이 빨래집게에 물려 나뭇잎처럼 흔들리고 있다. 차량검사를 하는 동안 걸려있는 출입증 몇개를 들여다 보니 한결같이 50대 이상의 주민들 것이다.

검문소를 통과하면서 초소 창문에 써진 글씨를 힐끗 보았다. '빨간 모자를 쓰자". 군인들은 매일 민통선을 드나드는 주민들과 의심나는 외지인을 쉽게 구별하고자 빨간 모자를 쓰도록 하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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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적지

'철마는 달리고 싶다'의 현장 월정역은 철의삼각지 전망대 바로 옆에 있다. 경원선의 간이역인 이 역은 전쟁당시 폭격에 의해 부서진 철마의 잔해를 보여주고 있고 부서졌던 역사도 아담하게 복원해 놓았다. 현재 경원선은 서울에서 신탄리까지만 운행된다. 통일이 된다면 아니 최소한 왕래라도 자유로와진다면 옛날에 그랬던 것처럼 금강산가는 열차의 간이역 역할을 다시 할 수 있을텐데.

앙상하게 뼈대만을 세우고 있는 노동당사 건물에 다가가면 발길을 머뭇거리게하는꺼림직함이 생긴다. 이러한 느낌은 건물안에 들어서면서 순식간에 사라져버리고 피식 웃음이 나온다. 건물안 벽과 기둥은 온통 낙서로 채워져 있다. 건물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낙서장이다.

'열린음악회'가 이곳에서 열렸고 서태지와 아이들의 '발해를 꿈꾸며' 뮤직비디오를 여기서 찍었다. 만약에 혹시라도 낙서전시회 같은 것이 열린다면 마땅한 장소는 바로 여기라는 생각이 든다.

도피안사는 명성에 비해 작은 절이다. 그나마 현재 있는 대웅전과 요사체는 최근에 만들어진 것이다. 유명한 도피안사의 비로자나 철불은 開金을 하여 번들거리는 얼굴로 나를 내려다본다. 불상을 천박하게 만드는 개금사업은 주지승의 수완과 능력을 과시하는 일로 불교계에서는 아직도 받아지는가?

스님이 출타중인지 법당안에는 아무도 없다. 태연히 법당을 나와 구철원을 향해서 내려간다. 도피안사는 얼마전부터 민통선에서 해제되어 이제는 좀더 쉽게 가볼 수 있는 곳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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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석날 고향에 가서

   들국화 핀

   골짜기 길을 오르다가

   구멍 뚫린 철모 하나를 보았다.

   총소리와 함성이 되섞이던

   삼십오년 전 그날

   이 철모의 임자는 쓰러졌을까?

   (들고 간 술 한 잔을

   그 아래 부어 놓고

   가을 제사를 지낸다.)

   이름없는 죽은 전사의 넋이여

   그대가 어는 편 사람이었든

   상관하지 않으마!

   아, 가을빛 짙은 철원 평야

   억새풀 흐느끼는 옛싸움터에

   오늘은 국경 없는 바람이 분다.

               (민영님의 「엉겅퀴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