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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해안 7번 국도 종주기

 

 

。작성자 : 김정은(bwkje)
。작성일 : 2000-07-24
。출처 : 하이텔 국내여행 게시판
。홈페이지 : http://myhome.hananet.net/~bwkje

 

 

진부령 넘어 화진포까지

홍상수 감독의 영화 "강원도의 힘"에서는 아름다운 불륜(?)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남, 녀가 제각각 다른 사람들과 동시간에 강원도로 여행을 떠나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만큼 한국 사람에게 있어서 강원도, 좁게 말해서 동해바다는 휴양지 이상의 의미가 있다. 영화 바보들의 행진에서 자신의 꿈과 이상인 고래를 잡으러 떠나는 곳도 동해이고, 고래사냥에서 벙어리인 이미숙이 회귀하고자 하는 고향집도 동해바다요, 말문이 트인 곳도 역시 동해바다였다.

도대체 동해 바다의 어떠한 영향력이, 이렇게 많은 영화의 단골소재로 등장하고 있는 것일까? 하기야 지금 동해일주를 떠나는 나 자신도 바다를 향해 달릴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몇년째 벼르고 이렇게 설레는데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길이 막힐까봐 오전 6시 40분 과천의 친구를 태우고 출발한 자동차는 오전 7시쯤 잠실에 도착, 올림픽 대로를 타고 미사리, 양평, 홍천, 인제방면에 나있는 국도를 타고 신나게 달렸다. 지금이야 양평 가는 국도가 거의 고속도로 수준으로 뚫려 있어서 새삼 옛날 강변을 끼고 호젓하게 달리던 그 시절의 낭만이 사라진지 오래지만 나같이 장거리 여행을 시작하는 사람에게 양평가는 길은 운전의 부담(?)을 덜어주는 고마운 길임에 틀림없다.

쉼없이 길을 달린지 3시간 정도 지났을까? 진부령과 미시령이 갈라지는 용대 삼거리에 당도하였다. 속초 쪽으로 더 빨리 가려면 미시령쪽으로 가야하지만 동해안 최북단인 고성군부터 일주하려면 아무래도 진부령쪽이 빠르리라는 생각이 들어 진부령쪽으로 차를 몰았다.

나는 진부령과 미시령을 넘을 때마다 언제나 우리 큰 오빠가 생각난다. 바로 우리 오빠가 군시절에 다 떨어진 군복 작업복을 입고 삽 하나와 땀방울로 이 고개에 길을 만들었다는 무용담을 매번 들어왔기 때문일까? 지금이야 최신 건설장비로 뚝딱 뚝딱 몇번만 하면 도로가 건설되지만 '70년대 초야 어디 그런 장비가 있었겠는가? 산은 차도 못다닐 만큼 험하고 장비는 열악하고 길을 뚫어야 겠고 맨땅에 헤딩하기로 인원수로 밀어부쳐야겠는데 지금도 마찬가지겠지만 인력동원이 가장 손쉬운 집단이 바로 군대가 아니던가? "무에서 유를 창조하라"는 무식한 탱크식 호령에 한창 때인 20살의 청년들이 이 고개에서 땀방울을 흘렸을 생각을 하면 괜히 코끝이 찡해진다.

아마 진부령을 넘는 이 순간에도 저 구석 어딘가에는 우리 오빠의 땀방울이 배어있으리라는 상상을 해본다. 진부령을 넘어 간성, 대진 통일전망대쪽으로 차를 몰았다. 김일성과 이승만 별장이 있다는 화진포를 가기 위해서이다. 엄밀하게 말해서 7번 국도의 북쪽 첫기착지는 통일전망대여야 하겠지만 나나 내친구나 통일 전망대는 그동안 지겹도록 봐 온 터라 이번에 과감히 생략키로 하고 화진포 해수욕장부터 여정을 시작하기로 했다.

진부령을 넘어오자 곧바로 7번 국도 바다길이 이어졌다. 1년만에 만나는 짙은 코발트빛 바다가 환상적이다. 이 곳에 올 때마다 늘 느끼는 생각이지만 바다색깔은 북으로 갈 수록 더욱 짙어지는 것같다. 특히 가을 겨울 바다 색깔은 금방이라도 빨려들어갈만큼 위협적이면서도 더욱 짙어지는 것같다.

오염이 그만큼 덜 된 탓인가? 바다색깔로만 따지면 제주도 앞바다가 최고이고 그 다음이 이곳 고성쪽 동해바다일거라는 생각을 하며 화진포로 달려갔다.

 

영화 '태양은 없다'의 촬영지 화진포

영화 '태양은 없다'에서 이정재가 모래밭에서 축구도 하고 바다를 바라보며 이야기 나누는 장면을 보고 "도대체 저 곳이 어디야"라고 생각했다면 고민할 필요가 없다. 바로 화진포 해수욕장이기 때문이다.

화진포 해수욕장은 경포호라는 호수와 바다가 공존하는 강릉 경포대 해수욕장의 구조와 유사하게 화진포라는 호수와 바다가 공존하는 곳이다. 실제로 가보면 울창한 소나무 숲과 드 넓은 호수, 그리고 그 앞에 펼쳐진 깨끗한 백사장과 맑은 코발트색 바다가 매우 인상적인 곳이다.

화진포 해수욕장에서 유명한 볼거리라면 바로 한반도 냉전의 하수인 김일성과 이승만, 그의 똘만이 이기붕의 별장일 것이다. 그당시 국민들은 보리죽도 못먹어 굶어죽는 사람이 부지기수였는데 명색이 지도자라는 인간(?)들이 이렇게 풍광 좋은 곳에서 유유자적하고 있었다는데 대해 괜히 심증이 난다.

어디 얼마만큼 호위호식했는지 살펴보자는 심술기가 발동하여 입장료 1,500원을 내고 김일성별장부터 둘러보기로 했다. 1인당 1,500원이면 이 세별장을 모두 살펴볼 수 있다.

생각 외로 김일성 별장 안은 매우 비좁았고 가구들도 수수했다. 육군이 다시 개축한 것이라는데 그 당시야 최고의 시설이었겠지만 아무래도 나라가 가난하다보니 역시 어쩔 수 없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문을 열면 바로 코발트 색 망망대해가 펼쳐지는 전경은 우리나라에서 몇 손가락 꼽는 풍광임에는 틀림없다.

이에 반해 이승만 별장은 외국여자와 미국생활을 오래 해서 그런지 실내는 김일성 별장에 비해 거실 구석에는 벽난로도 있고 제법 세련된 느낌이 들지만 협소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당시 남쪽의 경제사정이 북쪽보다 안좋았다는 사실을 생각한다면 이 정도도 매우 호화스러웠으리란 생각이 든다. 위치상으로는 바다와 접해있는 절벽 위에 있는 김일성 별장과는 달리 화진포 호수를 배경으로 자리하고 있어 풍광 면에선 김일성 것보다는 떨어진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기붕 별장이야 이 둘보다는 떨어지지만 둘은 국가원수라는 프리미엄때문에 그렇다 하지만 이 사람은 왜 여기에 별장을 지었는지 의도가 매우 의심스러웠다. 말해보았자 심증만 더 나니 생략하고 다음에 들릴 기회가 있다면 직접 가서 느껴보랄 수 밖에....

아침을 굶고 냅다 달리기만 하다보니 점심 때가 훨씬 지나 시장기가 돌았다. 점심 때부터 빈 속에 회를 먹기엔 좀 부담스러운 것같아서 화진포 막국수라는 곳에서 막국수를 먹었는데 유명하다는 말과 달리 동치미 국물이 별로 감칠 맛이 없어서 입안이 더 까실까실하기만 했다. 그냥 밥을 먹을 걸... 은근히 후회가 되었다.

 

마주보고 있는 등대가 인상적인 아야진항

대충 점심식사를 마치고 남쪽으로 10분 정도 내려가 멈춘 곳은 간성의 아야진 항구..아야진, 이름조차 특이하지만 보면 볼 수록 정이 가는 아담한 항구이다. 양쪽으로 돌출된 만으로 인해 고즈녁한 내해가 생겼는데 돌출된 양쪽 만에는 빨간 등대와 흰 등대가 서로 사이좋게 마주하고 있는 항구모양이 참 이채로웠다. 저멀리 신나게 제트스키를 즐기는 사람들이 보인다. 이곳은 수영보다는 스쿠버 다이빙이나 제트스키 등의 레저 스포츠를 즐기는 사람들이 더 많은 것같다. 바로 옆에는 조그만 해수욕장도 있었는데 낙산 쪽과는 달리 인파가 덜 붐비는데다가 바다도 깨끗한 것이 조용하게 휴식을 취하기 좋은 동네이지만 민박 외에는 숙박시설이 별로 안보이는 것이 흠이라고나 할까? 동네 안쪽에 하나로 마트 간판이 보이길래 컵라면과 마실 것을 사기 위해 들어갔는데 에어컨을 어찌나 틀었는지 시원해서 떠나기 싫었다.

날씨가 워낙 더운 바람에 자동차를 계속 달리다보면 에어컨 냉기가 신통치 않을 때가 많다. 비록 내 자동차가 고물이기는 하지만 에어컨 하나는 끝내 주었는데 너무 자동차를 혹사시키다 보니 얘도 소리 없는 반항을 하는지 그리 시원한 느낌은 들지 않던 차에 자동차도 쉴 겸 냉방 잘된 하나로 마트에서 시원한 음료수를 마시면서 땀을 식혔다.

 

청호동 갯배와 속초 중앙시장

아야진을 나와 관동팔경의 하나인 청간정을 슬쩍 지나쳐 계속 해안도로를 달렸다. 계속 드넓은 바다를 보고 달리려니 어찌나 속이 시원한지, 이렇게 좋은 것을 바쁘다는 핑게로 그동안 왜 다니지 못했는지 후회스러웠다. 속도가 빠를 수록 내안의 묵은 스트레스 찌거기가 술술 나와 저 드 넓은 바다에 떨어져 흔적 없이 사라지는 것같은 느낌이 든다.

남쪽으로 별로 달린 것같지도 않은데 어느새 속초시내를 알리는 표지판이 보인다. 갑자기 머리가 아파온다. 이번에는 기어코 청호동의 명물 갯배와 속초 중앙시장 구경을 해야 하는데 당장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할지 감을 잡을 수 없다. 지도, 약도 모두 보았지만 외지인이 낯선 지역을 약도나 지도 하나만으로 찾기에는 우리 나라 도로는 너무 불친절하다는 것은 모두 알려진 사실...

이 때 가장 손쉽게 알 수 있는 방법은 주유소로 들어가 그곳 사람에게 위치를 물어보는 것이다. 주차 걱정이 없으므로 여유있게 물어볼 수 있어 자주 애용하는 편인데 저만치 주유소가 눈에 들어왔다. 주유소 사람들은 바쁜 것같아 그 옆의 카센터 아저씨들에게 속초 중앙시장과 청호동 갯배 타러 가는 길을 물어보았다. 아저씨 세분은 서로 이쪽이 낫다느니 저쪽이 낫다느니 설왕설래하다가 주차하기가 편하다는 이유로 청호동 다리를 건너서 청호동에서 주차를 하고 속초로 나오는 갯배를 타고 나와 직진해서 조금만 걸으면 중앙시장이니 장 보고 다시 갯배를 타고 청호동으로 오는 것이 좋으리라는 조언을 해주면서 청호동에 가는 길을 약도까지 그려주며 정성껏 가르쳐 주셨다. 그 아저씨 덕분에 드디어 여유롭게 갯배를 타게 되어 너무 고맙다.

아다시피 속초는 청초호를 둘러싸고 시가지가 형성된 곳이다. 청초호는 전세계적으로도 희소가치가 있는 자연 석호중의 하나이지만 지금은 인간들의 훼손으로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찾을 길 없다는데 답답함을 느낀다. 일부에서는 수질오염이나 되니 매립하자는 의견도 있다는데 환경을 보존할 생각은 하지 않고 귀찮은 것은 무조건 덮어보자는 군사문화의 독소가 아직까지 남아있다는 것이 참 놀랍고 부끄러울 뿐이다. 그래도 다행인 것이 강원 엑스포 덕분에 거의 사라질 뻔한 청호동의 명물 갯배가 다시 새단장해서 운행하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 고맙다.

엑스포 탑을 끼고 계속 좌회전 하다보면 다리를 건너 청호동 마을이 나온다. "청호동 방파제 너머 떠다니는 섬이 있다는 걸 사람들은 믿지 않는다.

(중략)

청호동 방파제 너머 새섬을 사람들은 모른다. 청호동 사람들의 동해 밑바닥 국적없는 고기를 잡거나 모래 위에 집짓고 아이들을 낳는 사실을 믿거나 믿지 않는 건 무서운 일이다. 나룻배 끊기면 흐르는 땅 모래 껴앉고 아바이들 잠드는 청호동 방파제 너머 이남 물과 이북 물이 야, 이 간나새끼 마이 늙었구만 하며 공개적으로 억세게 무너지면 동해 속으로 사라질 청호동은 잠시 객지일 뿐이고 분명히 객지여야 한다. 청호동 방파제 너머 청호동 사람들의 흐르는 섬이 있다는 걸 사람들은 믿지 않는다. [흐르는 섬 -이상국]

청호동, 속칭 아바이 마을이라고 불리우는 이 곳은 함경도 실향민들이 6.25 때 피난나와 고향에 돌아가지 못하고 정착한 남한 유일의 실향민 마을이다. 마침 이 날은 북측에서 보내온 이산가족 명단이 발표된 날이라서 이 곳 사람들의 심정이 더욱 착잡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함경도 출신들이 많이 살기 때문에 이 곳의 함흥냉면은 가자미 식혜와 아울러 원조 함흥냉면의 맛이라는데 특히 단천냉면집이 가장 유명하다고 한다. 원래는 점심을 단천냉면집에서 먹을 예정이었으나 거리계산을 잘못하는 바람에 점심때도 저녁때도 아닌 어정쩡한 시간에 도착했기에 단천냉면이라는 허름한 간판만 보고 지나치면서 입맛만 다셔야 했다. 참 아쉽기도 하지... 그러나 어쩌라 아쉬움은 후일로 남기고 갯배 타는 것으로 달래는 수밖에....

갯배는 네모난 나무판자 가운데에 쇠줄을 달았는데 정육점 냉동창고같은데서 큰 고기를 찍어 나르는데 쓰이는 쇠갈고리 같은 것을 사람들이 각자 가지고 쇠줄에 걸어 끌어잡아 당기면서 가면 스르르 앞으로 가는 특이한 구조의 무동력선이다. 매표소는 청호동 쪽 선착장에 있는데 속초쪽에서 오는 사람은 청호동에서 운임을 내면 된다. 운임은 편도 150원.

직접 안보면 배 위의 줄을 잡아당기는 배(영월, 정선쪽 나룻배가 이 형태)로 알기 쉬우나 이와는 달리 쇠줄이 배 밑 중심에 있는 특이한 구조의 배였다. 호기심이 발동하여 나도 갈고리를 들고 쇠줄을 걸어 끌어 잡아당겨봤는데 어찌나 힘이 들던지... 여러 사람이 모여 협동해서 끌지 않으면 혼자의 힘만으로는 도저히 이 배를 끌수 없었다. 협동의 중요성을 자연스럽게 체험하는 기회가 된다고 할까? 그 곳 주민들은 배에 올라타면 누구라고 할 것없이 갈고리를 들고 쇠줄을 자연스럽게 끄는데 그 모습이 너무 살가워 보였다.

갯배에서 내려 속초 중앙시장으로 향했다. 갯배 선착장에서 중앙시장까지는 넉넉히 도보로 5분 정도 걸리는데 소문 들은 것만큼 넓은 편은 아니었다. 지상에는 보통 시장에서 볼 수 있는 생선 난전, 야채 난전상들이 오밀조밀 밀집해 있었지만 어느 곳에서도 활어는 팔지 않았다. 물어 물어 활어회를 파는 지하 시장에 갔는데 겉 분위기는 가락동이나 노량진 수산물시장의 축소판이어서 조금 실망했고 활어도 대포보다 그리 싸지는 않아 보였다. 만원짜리 광어와 쫀데기(?)라는 잡생선을 섞어 2만원에 회와 상추, 찌게 양념까지 해주기로 했는데 생선이 대포보다 별로 싸지 않더라고 하는 내 말에 아주머니는 무슨 섭섭한 소리냐면서 대포에서 회를 먹으려면 회 따로 상추, 야채 따로 사야되는데 야채만 8,000원 정도 된다면서 찌개거리 양념까지 공짜로 해주는 곳은 여기밖에 없단다.

하긴 그 말도 맞긴 맞다. 무채 없이 차곡차곡 1회용 접시에 썰어논 횟감의 양이 꽤 많다는 것을 느낀 것은 휴양소에 돌아와서 직접 먹어 본 다음에야 깨달았으니까? 게다가 내가 하두 멍게 서비스, 멍게 서비스하고 조르니 "요즘 멍게가 잡히지 않는데" 하면서도 멍게 하나를 서비스로 썰어주었으니... 친절하기도 하셔라. 그러면서도 찌개거리 양념에 쑥갓이 없어 못넣어주는 것이 맘에 걸렸는지 시장에서 500원어치만 사서 넣으란다. 그 아주머니 말대로 난전에서 쑥갓을 500원어치 샀는데 어찌나 많이 주던지.. 찌개에 넣겠다고 풋고추 한개만 서비스로 달랬는데 5개 정도 성큼 집어주는 그 할머니의 순박한 인정에서 사람 사는 체취가 느껴진다. 고추값만 500원은 될텐데...

하여간 속초 중앙시장에서 4인 가족에 5만원 정도면 찌개하고 해서 양껏 먹을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다. 회가 좀 부족한 듯하면 굳이 산문어가 아니라도 난전에서 곧바로 잡은 문어를 파니 하나 사서 삶아먹으면 충분할 것이다. 5개에 2000원 주고 산 참외와 횟감, 매운탕거리 2만원어치, 쑥갓 등을 들고 선착장으로 걸어와서 다시 청호동행 갯배를 탔다. 청호동 백사장에 주차한 자동차를 타고 회사 휴양소가 있는 설악 해수욕장까지 도착한 시간은 약 15분, 주유소 옆 카센터 아저씨 덕분에 여유있게 속초시장도 구경하고 갯배도 타게 된 것이 참 고마웠다. 사실 자동차로 속초시장을 가려면 그 앞길이 매우 복잡하고 주차할 곳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휴양소에 도착해서 방 배정을 받아 방으로 들어온 시간이 오후 5시 정도, 허기진 시장기를 달래기 위해 베낭을 방바닥에 내려 놓자마자 코펠에 쌀을 씻어 밥을 짓고, 또다른 코펠에 매운탕거리를 그대로 넣고 물만 붓고 끓이기 시작했다. 역시 전문가가 한 양념은 다른가 보다. 우리 눈에는 그냥 마늘, 고춧가루, 무 같은 것을 대충대충 집어넣은 것같았으나 끓여놓고 보니 횟집에서 먹는 매운탕 그대로의 칼칼한 맛이 살아있었다. 금방 지은 밥과 회와 찌개를 앞에 놓고 저녁을 먹었는데 찌개도 회도 그대로 남았다. 할 수없이 냉장고에 남은 것을 집어넣고 하조대 해수욕장으로 출발했다.

 

하조대, 절벽카페 범핀

하조대 해수욕장은 작년에도 온 곳인데 보면 볼수록 풍광이 매력적인 곳이다. 특히 하조대 정자와 무인등대에서 노송에 둘러쌓인 절벽을 내려다보면 시퍼런 파도가 절벽에 부딪치며 흰 포말을 그리는 생김새가 범상치 않다. 바라만 보고 있으면 바다 속으로 빨려 들어갈 것같은 그윽한 눈동자와 같은 곳이라고나 할까?

나나 친구나 '멋있다'라는 말 밖에 할 수 없었다. 하조대는 옛날부터 일출의 명소로 알려져 있다. 조선 개국공신인 하륜과 조준이 이곳에서 은거했다는데 이런 기막힌 경치 속에서 음침한 정치얘기를 할 리는 없고 그들은 도대체 이곳에서 무엇을 했을까? 정자 위에 앉아 한가롭게 음픙농월을 했을까? 아니면 바둑이나 장기를 두느라고 도끼자루 썩는 줄 몰랐을까? 만약 이런 곳에서 더러운 권모술수를 논의했다면 자연 모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인등대나 하조대 정자는 군사시설구역이라 봄~ 가을에는 오후 6시 이후 겨울에는 오후 5시 이후 출입이 통제된다고 하는데 우리가 이날 도착한 시간이 6시가 안됐는데도 이미 무인등대 가는 철문은 꽁꽁 잠겨있었던 것으로 보아 일찍 가야지 모두 구경할 수 있을 것이다. 출입시에는 대표자 한명의 신분증을 맡겨야 입장 가능하니 주의하기 바란다.

하조대 정자에서 내려와 절벽을 자연스럽게 이용한 특이한 카페 범핀에 들러 칵테일과 아이스티를 마셨다. 이 카페는 입구부터 특이한 나무조각들이 전시되어있었고 외국 영화에서나 보는 잘생긴 개들이 손님을 맞고 있었다. 개들이 워낙 순해서 카페 손님이 만져도 낯을 가리지 않고 가만히 있는게 너무 사랑스러웠다. 오후 11시까지 영업한다는데 자연과 함께 촛불 속에서 바라보는 카페의 풍경은 낭만적이었으나 그 낭만의 댓가(?)일 수도 있는 모기의 공습이 장난이 아니었다. 하여간 연인과 함께 못온 것을 한스러워 하며 우리는 휴양소로 되돌아 왔다.

이대로 그냥 잠자리에 들기에는 밤바다가 너무 고혹적이지 않은가? 회도 남았겠다, 찌게도 남았겠다, 냉장고에 넣은 참외도 적당히 시원해졌겠다. 코펠 뚜껑에 깍아놓은 참외와 남은 찌게, 회를 코펠 채 접시채 들고 백사장에 자리를 깔고 앉아 버너에 찌게를 데우면서 밤바다를 보며 맥주 한 캔씩을 하였다. 같이 온 친구 생일이 지난지 일주일도 안되어서 쵸코파이에 흰 양초 하나를 푹 넣어 촛불을 켜고 간단히 생일을 축하했다.

밤바다는 생각보다 활기에 차있었다. 별은 보이지 않았지만 프랑스 영화 퐁네프의 연인들에서 나오는 불꽃놀이가 연상될 정도로 밤하늘엔 저마다 폭죽을 터트리고 있었고 폭죽이 잦아들면 그 때를 기다렸다는 듯 쏴 하는 파도 소리가 잠시동안의 정적을 깨트렸다.

쵸코파이에 꽂은 양초를 빼서 모래밭에 꽂고 불을 지폈다. 바다바람이 세서 그런지 촛불은 자꾸 꺼져 오랜만에 분위기 잡아보려는 철없는 노처녀들을 실망시켰다. 그냥 포기하고 있으려니 옆에 둘이 온 여학생이 양초를 종이컵에 끼워 불을 켜놓는 것이 아닌가? 이런 무식함이... 저런 좋은 방법이 있었는데도 양초 불이 자꾸만 꺼진다고 바람 탓만 했으니...머리 나쁘면 부지런히 배워야 한다고 얼른 종이컵을 사러 매점으로 달려갔다. 결국 우리들의 양초도 바닷바람에 끄덕없이 밤바다를 환하게 밝혀주었다. 설악 해수욕장에서의 하루는 이렇게 저물어 갔다.

 

해뜨는 마을 외옹치 그리고 대포항

늦게 잔 덕분에 오전 7시에 일어난 우리는 간단하게 사발면으로 아침식사를 때우고 짐을 주섬주섬 챙긴 다음 휴양소를 떠났다. 참 어제 저녁을 먹은 후 오늘 먹으려고 물에 타 전날 냉장고에 넣은 미숫가루를 개인 생수병에 넣어 가지고 갔는데 그 미숫가루야말로 긴 여정에 목마름과 허기를 채워주는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 것같다.

일단 대포항을 지나 대포항의 주차단속을 하는 경찰아저씨에게 물어물어 외옹치 항에 도달했다. 해돋는 마을 외옹치는 속초시 대포동 끝자락에 위치한 전형적인 바닷가 마을로 80여세대가 동산 위의 성황당을 모시고 옹기종기 모여살고 있다. 이곳 외옹치는 엑스포 때 속초 8경의 하나로 지정되었지만 아직까지 본격적인 관광지로 개발되지 않아 청정바다를 자랑하는 속초의 마지막 처녀바다라 할 수 있다. 그래서 그런지 외옹치항은 속초에서 버스가 들어가지 않는 유일한 항구라고 한다.

일단 도로 옆에 주차를 해놓고 마을사람들에게 성황당 위치를 물어 찾아가니 얕으마한 동산 위에 일자로 집 한채가 들어서 있는데 집옆의 아주 작은 소로로 올라가면 노송이 빽빽한 동산 위로 어찌 보면 실망 스러울 수 있는 아주 작은 성황당이 나온다. 그러나 성황당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빽빽한 노송과 그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동해 바다의 아름다움에 실망스러움은 금새 사그라진다. 또하나 놀랄 것은 그 볼품없는 성황당이 200년도 더 된 것이라는 사실이다. 비록 규모가 작더라도 바다바람에 그렇게 의연하게 버티고 있는 그 조그만 성황당의 위력에 새삼 감탄을 금치 못하며 내려왔다.

성황당에서 외옹치항을 내려다보니 저만치에 조그마한 길이 뚫린 것같아서 해안도로 일주도 할겸 바다를 끼고 달렸다. 얼마 안가 막다른 길에 도착한 것같아 다시 뒤로 돌아갈 것인가 아니면 위로 뚫린 도로로 갈 것인가 걱정을 하고 있는데 마침 오토바이를 탄 아저씨가 왔기에 길을 물었다. 그 아저씨 말인즉 위로 올라가면 군대이니 올라갈 필요없고 막다른 길같이 보이지만 자동차 한대가 지나갈 수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하는 것이 아닌가?

그 아저씨 말을 믿고 막다른 길처럼 보이는 길을 자동차로 달렸다. 도로옆의 철책 아래로 푸른 바다가 넘실대는 진귀한 풍경이 계속 이어졌다. 이윽고 그 소로를 빠져나오니 이런! 이곳이 바로 대포항 횟집거리 아닌가? 어제 속초시장에서 회 사느라 오징어를 깜빡 잊고 못 사 걱정했는데 이렇게 손쉽게 주차요금도 내지 않고 대포항에 진입했다는데 참 신기했다. 얼른 차안에서 오징어 값을 흥정하여 오징어 몇축을 사서 대포항 뒷길로 빠져 나와 강릉을 향해 달렸다. 참 신기한 경험을 한 것같다. 자동차를 이용하시는 분은 대포항쪽에서 외옹치로 가려면 주차요금을 내고 걸어가야 하는데 나와 같은 코스로 가면 별로 걷지도 않고 매우 재미있는 경험을 하리라고 본다. 올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오징어는 대포항 것이 주문진항 것보다 맛있는 것같다.

 

소리와 빛의 환상적인 만남, 강릉 참소리 박물관

속초에서 어제 본 하조대를 지나 강릉까지 7번 국도를 타고 계속 달렸다. 동해바다는 시각과 위치에 따라 다른 모습과 느낌으로 다가오곤 한다. 어제 밤 하조대에서 설악해수욕장으로 돌아갈 때의 그 밤바다와 지금 이 시각 멀리서 바라보는 동해바다는 전혀 다른 장소인 것처럼 낯설었다고나 할까?

다양한 색깔과 다양한 정취, 바로 이러한 점이 바다의 매력이 아닐까? 강릉에 도착하니 속초와는 달리 사람이며 차가 2배는 많아보인다. 특히 경포대 해수욕장은 사람들과 자동차로 벌써 발디딜 틈이 없다. 왜 사람들은 조용한 곳을 놔두고 왜 이리 복잡한 곳을 찾아 고생을 하며 즐기려는 것일까? 남들도 다 가는데 나도 가겠다는 군중심리일까? 군중심리라고 해도 복잡한 곳을 좋아하는 성격이라고 해도 좋다. 단 이런 행락객 덕분에 속초와 강릉의 해수욕장 내 민박은 시설도 별 볼 일 없으면서 거의 10만원에서 20만원씩 폭리를 취하는 것이 아닌가? 거의 콘도 가격 수준이니 쯔쯧...

내가 경험해보기 전까지는 민박 시설에서 10만원 이상의 가격이 나온다는게 영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이번에 휴양소로 되어 있는 민박을 경험해보니 이해가 되었다. 내 돈 내고 간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1박에 8만원씩이나 내고 계약했다는 것이 참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설 또한 이부자리며 이런 저런 시설들이 엉망이니... 싫으면 하지말라며 너 아니어도 방 달라는 사람들이 줄 서있다는 식의 민박집 주인들의 당당한(?) 태도를 보면서 동해바다는 좋지만 숙박업소 미워서라도 가급적 여름에는 가지 않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더욱 굳히는(?) 계기가 되었다.

하여간 복잡한 경포대를 빠져나와 강원도 사대부가옥의 전형이라는 선교장을 지나쳐 참소리 박물관을 찾아가려니 이전에 있던 이정표가 없어져서 어디로 가야 할지 또 헷갈리기 시작했다. 마침 우체국 간판에 관광안내를 한다는 내용이 보이므로 친구보고 우체국 가서 참소리 박물관 가는 길을 물어보라고 했다. 이윽고 돌아온 친구 왈, 길은 가르쳐주던데 참소리 박물관을 물어보니 대뜸 "가는 길이 굉장히 멀다며 볼 것도 없는데 그 먼길까지 왜 가려하느냐"는 투로 뜨악하게 답변하더란다. 나 참, 그런 식으로 관광안내를 한다면 안하는게 낫지, 좀 특색있는 경험을 해보고 싶어 찾아가는 사람에게 보다 적극적인 소개와 추천을 못해줄 망청 초치는 태도라니..

참 우리나라 관광정책은 문제가 많다고 생각한다. 유홍준 교수가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아는 만큼 보인다"라 하지 않던가? 잘 모르는 관광객들이 여행을 보다 더 알고 이해하고 느낄 수 있도록 설명은 못할 망정 초를 치는 형식적인 관광안내는 좀 지양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하다.

결국 물어 물어 강릉 참소리 박물관에 도착했다. 자동차로 가기에는 경포대에서 생각만큼 그리 긴 거리도 아니었다. 강릉 참소리 박물관은 세계에서 하나뿐인 축음기 박물관이다. 관장인 손성목 씨가 사재를 털어 평생을 수집한 집념의 산물인 각국의 희귀한 축음기들이 시대별로 유리대 위에 수없이 많이 전시되어있다. 이곳에 오면 세번을 놀라게 되는 것같다. 첫번째는 아파트 옆에 위치한 박물관의 허름한 규모에 놀라고, 두번째는 축음기의 종류와 수량과 다양함에 놀라고, 세번째는 축음기에 대한 관장의 끈질긴 집념과 재력(?)에 놀라게 된다. 여기에 덧붙여 이 박물관이 가지는 가장 큰 매력중의 하나는 자체 교육을 받은 직원들이 각종 전시물의 역사적인 배경, 작동원리 들을 하나하나 구두로 설명해주고 안내하는 중간중간에 축음기에서 나오는 생생한 소리들을 직접 작동하여 들려준다는 것이다.

솔직히 오디오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무식한 대중들이 그냥 유리장에 전시된 축음기만 보면 뭐를 알 수 있는가? 솔직히 참 축음기가 많다는 느낌밖에 더 들겠는가? 그 누가 이 축음기가 1877년 에디슨이 만든 유성기 1호인 틴호일이라는 역사적인 기계이며 그 기계를 작동하면 아직까지 행진곡이 나온다는 신기한 사실을 감히 생각해볼 수 있겠는가? 그리고 고종 때 들여와서 판소리를 녹음해서 틀었더니 사람들이 모두 놀라 기겁을 했다는 그 이야기들을 들으며 바로 그 축음기 소리를 직접 감상할 수 있으리라곤 꿈도 꾸어보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일들이 참소리 박물관에서는 모두 가능하였다. 거기에다 각종 레이블 음반의 표지를 장식하는 개 니퍼 이야기와 에디슨 초기의 대나무 필라멘트 전구의 영롱한 빛까지 서비스로 모두 볼 수 있는 곳이어서 아이들과 함께 꼭 한번 들러 볼 가치가 충분한 추천 코스이다. 정말 아는 만큼 보인다는 설명이 꼭 알맞은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축음기를 만든 국가는 전세계적으로 19개국 밖에 안되고 그 19개국에 우리나라는 해당되지 않지만 그 축음기 1호부터 모두 모여져 있는 곳은 한국 이곳밖에 없다는 관장의 자랑과 자부심이 정말 수긍이 간다.

참 심심한데 니퍼 이야기나 할까? 옛날 독일(?)의 어느 가정에 음악을 좋아하는 주인과 니퍼라는 이름의 개 한마리가 있었다. 주인은 늘 축음기에서 나오는 음악을 들었고 주인이 음악감상을 할때면 니퍼는 살금 살금 다가와 주인의 곁에 앉아 음악을 같이 들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 주인이 사망하자 음악을 들을 수 없게된 이 니퍼라는 개는 어느날 길거리를 가다가 축음기 속에서 들려오는 낯익은 목소리에 놀라 주인이 온 줄 알고 나팔에 귀를 쫑긋 세우고 음악이 끝날 때까지 듣고 있었다고 한다. 이것이 바로 그의 주인의 목소리(His master's voice)라고 잘 알려진 니퍼 이야기이다. 관람시간은 09:00부터 오후 5시까지이고 관람료는 일반 3,500원, 중고생 2,500원, 초등생 1,500원이다.

또 하나 정보는 오는 가을이면 과천 서울 대공원에서 참소리박물관 분관을 마련한다니 시간이 있으신 분들은 꼭 한번 찾아가서 아무 도움 없이 개인의 힘만으로 축음기 수집에 일생을 바친 이의 축음기 사랑과 집념을 느껴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초당 순두부 마을의 원조 할머지 순두부집

참소리 박물관을 나와 경포대 옆의 초당 순두부 마을에 있는 원조 할머니 순두부집을 찾아 점심을 먹기로 했다. 사실 초당 순두부와 나와의 악연(?)은 15년 전 쯤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때 큰 오빠 가족과 부모님을 모시고 강릉에 간 적이 있었다. 당시만 해도 초당두부는 그 곳 사람이나 알고 있는 먹거리였는데 마침 큰 올캐가 강원도 사람이라 초당두부 얘기를 했고 한번 먹어보자며 올캐의 길안내로 순두부촌을 찾아나섰는데 마을을 찾지못하고 헤매기만 하다가 포기한 쓰라린 기억이 있었다. 그 후에도 밤기차 타고 한 7년 전 쯤 친구와 강릉에 온 적이 있었는데 그 때도 이런 저런 사정으로 먹지 못했다. 그래서 이번에는 15년 전의 한을 풀고 기어코 먹어보리라 다짐했는데 이렇게 찾기가 쉬울 수가? 하기야 지금이야 초당두부가 두부의 고유 명사처럼 될 만큼 유명해졌으니까 그럴 법도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방벽에는 일본 방송과 한국방송에서 소개했던 방송사진들이 덕지덕지 붙어있었고 성능 좋은 에어컨은 이 더운 날에도 쌩쌩 잘도 돌아가고 있었다. 메뉴라야 판두부와 순두부, 순두부백반 달랑 3개, 그것도 순두부 백반이란게 순두부에 밥 한공기 추가한 것이라니 오로지 순두부와 판두부밖에 없는 셈이다. 순두부는 다른 곳에 비해 부드러운 맛이 더 강했고 다른 곳은 양념장이 외간장인데 비해 이곳은 국간장으로 보이는데 그래서 그런지 칼칼한 맛이 났다. 짠지를 물에 우려 된장을 풀어 끓인 된장찌개도 특유의 깊은 맛이 있는데 한끼 4,000원이면 점심식사를 할 수 있어 저렴한 편이니 강릉에 가면 이곳을 꼭 한번 들러보는 것도 색다른 경험일 것이다.

 

너무나 달라지고 상혼에 오염된 정동진

강릉을 지나 7번국도를 타고 남으로 남으로 계속 달렸다. 등명 낙가사와 정동진을 지나는 7번 국도의 해안도로는 풍광이 빼어난 것으로 유명한데 요즘은 이곳이 너무 잘 알려진 나머지 가는 길마다 1차선에 주차차량들이 길게 늘어서 있어 차가 다니기가 아주 불편하였다. 나참, 조금만 좋다고 하면 이 난리들이니... 자신이 편하다고 남에게 피해를 주는 이러한 이기주의때문에 우리의 아름다움이 사라져버리는 것이 아닐까?

전적인 예가 바로 정동진역이다. 그 단촐했던 간이역이 드라마를 타면서 조금 조금 알려지더니 급기야는 이런 흉물로 변해버렸다는 것이 놀라울 뿐이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내가 강릉에서 영주로 가는 비둘기호 열차를 타고정동진역에 내렸을 때만 해도 주위의 상가라고는 라면집 몇몇 뿐이었는데 지금은 곳곳이 모텔이요, 여관이고, 없던 해수욕장까지 생겼으니 그저 놀라울 뿐이다. 아마 철길 옆의 모래사장을 단장해서 해수욕장이라고 만들었나 보다.

그래도 등명 낙가사의 물맛은 여전할 것이라 자위하면서 옆의 친구와 함께 옛날 정동진에 갔던 무용담을 한참 얘기하였다. 바로 저곳이 낙가사에서 나와 버스를 기다리며 하염없이 앉아 얘기하던 곳이라는 둥... 정동진역 앞 라면을 끓여주던 허름한 가게방 온돌이 참 따뜻했었다는 둥, 이제 그 가게는 길로 확장되었는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위치조차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라는 둥...

추억을 다시 곱씹어보면 참 고생도 고생같지 않고 아련한 것이 더 달콤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건 조금만 더 동해쪽으로 가다가 추암 해수욕장 간판을 보면서도 한 말이다. 마침 이번에 동행하는 친구가 정동진과 추암해수욕장을 같이 같기 때문에 추억의 깊이가 더 컸을지 모른다. 추암 해수욕장은 정동진보다 더 먼저 갔었는데 당시만 해도 어찌나 깊이 들어가 있는 곳이였는지 모른다. 동해터미널에서 버스를 타고 운전기사가 내리라는 곳에 내려 사람들에게 물어물어 조그만 농로길을 걸어가는데 어찌나 멀던지, 그 속으로 들어가는 버스도 1시간 간격으로 있었지만 그 정보를 몰라 고생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지금은 추암해수욕장이라는 번듯한 간판이 입구에 세워지고 그 좁았던 길은 시원하게 아스팔트 포장이 되어 뚫려 있는 것을 보니 참 격세지감을 느꼈다.하여간 7번 국도를 타고 지나친 등명 낙가사와 정동진역, 추암 해수욕장은 간만에 추억이라는 이름 아래 마음껏 그 때를 상상하며 즐거워하는 계기가 되었다. 비록 지금은 옛날의 그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지만 내 가슴 속에 그 추억이 바래지 않는 한 정동진과 추암해수욕장은 나에게는 여전히 아름다운 모습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계속 7번 국도를 따라 남으로 남으로 내려갔다. 삼척을 끝으로 이제 바다는 이지 않았고 이제 조금씩 조금씩 피곤해지기 시작했다. 삼척에서 신기 환선굴이나 너와집을 보려 했는데 시간이 너무 늦어서 그만 포기하고 계속 남으로 내려갔다. 가는 도중 삼척에서 도로공사를 하는 것을 지나쳐 계속 직진한 것같은데 이상도 하지...

갑자기 산세가 험악해지는 것이었다. 직감적으로 이상한 생각이 들어 불안감이 엄습해 왔는데 그러면 그렇지 7번이 아닌 다른 번호의 국도 표지판이 보이는 것이었다. 바로 이 길이 삼척에서 태백산으로 들어가는 길이었던 것이다. 그래도 감으로 재빨리 알아차려 다시 되돌아갔으니 망정이지 큰 일날 뻔 했다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주범은 바로 도로공사였다. 도로공사 때문에 방향 표지가 이상해져 직진한 것같았으나 우회전을 하게 된 것이었다. 이 곳에서 새로운 다리를 건너야 되는데 또 가는 길이 헷갈려서 빙빙 돌다가 제자리를 찾았지만 참 문제라고 생각했다.

한국인인 나도 이렇게 구석구석 헷갈리는데 한국어도 할 줄 모르는 외국인이 자동차와 지도로 한국을 돌아다니려면 얼마나 고생이 심할지는 안봐도 뻔한 일... 그런데 외국은 도로표지판과 지도가 일치되어 지도만 보면 찾아가기 쉽게 해놓았다. 가까운 예로 뉴질랜드만 해도 갈림길마다 도로번호와 방향을 알리는 표지판을 세워놓아 지도만 보며 가면 아무 문제가 없게끔 잘 정비해놓았다. 하루빨리 우리나라도 지도와 도로를 알아보기 쉽게 일치시키고 갈림길마다 국도번호표지 알림판을 세워 놓아 지도에 표시된 국도번호만 봐도 잘 찾아갈 수 있도록 외국처럼 개선해야 하리라 본다.

삼척을 지나 울진으로 접어들어 자동차는 계속 달리기 시작했다. 갑자기 핸드폰이 삐리리 울리기 시작했다. 회사 노조인데 경북 노조지부장으로 전화 좀 해보란다. 무슨 일인가 궁금하여 전화를 걸었더니 구룡포쪽 휴양소 주인이 오후 6시가 되가는데 왜 예약한 손님이 안오냐며 오는건지 안오는건지 확인 좀 해달라고 해서 연락했단다. 아무리 늦어도 갈거니 걱정말라고 전화를 했지만 마음이 급해지기 시작한다.

영덕, 강구는 포기한지 오래이고 이제부터 줄곧 구룡포를 향해 앞만 보고 달렸다. 그런데 마음만 급할 뿐 도로사정은 좋지 않아 그 시골길에 정체되어 옴짝 달짝할 수 없었다. 그 멋진 망양휴게소 내에서 출렁이는 바다를 아주 가깝게 바라보아도, 망양 휴게소를 지나 도처에 강원도 바다와는 다른 느낌과 색깔의 경상도 바다를 바로 가까이에서 접하며 달려도 마음만 급할 뿐 별 감흥이 없었다. 괜히 이 연휴에 7번 국도로 구룡포까지 간다는 나의 무모함이 그렇게 한심스러울 수 없었다.

마침 차유리 쪽으로 겁없이 돌진하는 잠자리 떼는 셀 수 없이 많아 가뜩이나 답답한 운전자를 더욱 심란스럽게 만들었다. 도대체 그 많은 잠자리가 어디에서 온 것일까? 경상북도 땅에서 나를 처음 맞이 한 것이 잠자리떼였다면 믿어질까? 하여간 경상북도의 하늘은 수많은 잠자리떼 때문에 그리 맑아 보이지는 않았다. 참 이상하기도 하지... 왜 경상도에만 유난히 잠자리떼가 많은 것일까?

잠자리떼를 무더기로 보려니 옆의 친구가 한마디 거든다. " 꼭, 펄벅의 대지 중에 나오는 메뚜기 떼같지 않니?" 잠자리 자체가 별 피해도 주지 않건만 그렇게 생각하는 친구의 심정이 이해 갔다. 운전하는 사람을 생각해서 자제하고 있어 그렇지 옆의 친구도 이 지겨운 교통지체현상에 이미 짜증나기 시작했다는 것을...

포항만 가면 구룡포는 금방이라는 생각에 일단 이 악물고 포항으로 가자고 다짐하고 앞만 보고 남으로 남으로 내려갔다. 지체가 심한 곳은 자동차가 가다 서다를 반복하였지만 무슨 뾰족한 수 없이 계속 7번 국도를 달려야 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오후가 되니 에어컨 기능이 살아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mbc 드라마 '그대 그리고 나'의 촬영지로 유명해진 강구항과 삼사 해상공원을 표지만 보고 지나치니 얼마 안가 보경사 표지도 보인다. 그러나 어쩔 것인가? 갈 길은 바쁘고 시간은 없는데 다음을 기약하며 그냥 갈 수 밖에...

드디어 포항시내에 당도한 시간은 오후 8시, 이제 조금만 가면 구룡포 휴양소일거라는 생각을 하고 지나가는 행인에게 구룡포가는 길을 물어보니 경주 가는 쪽으로 가다가 동대병원을 보고 자회전하면 구룡포 가는 일주도로가 나오니 계속 직진하면 대충 40분 정도 걸린단다.

아니 40분 씩이나 걸린다니 꽤 먼거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계속 직진만 하면 구룡포로 간다니 용기백배해서 계속 차를 몰아 이윽고 구룡포에 당도하였다. 구룡포에 도착하자마자 우리는 휴양소인 민박 이름을 대며 길을 물어봤는데 그 행동이 얼마나 웃긴 행동이었다는 것은 후에 30분 정도 더 걸려서 휴양소에 도착했을 때야 비로소 알 수 있엇다.

가게 아저씨나, 주유소 총각이나 모두 20분만 가면 있다고 하는데 바다를 끼고 달리는 컴컴한 해안도로를 끝없이 달리면서도 그 휴양소는 보이지 않았다. 언덕 하나 넘으면 이곳인가 했지만 결국 아니였다는 것을 다섯차례 정도 반복하다 보니 호미곶의 거의 끝자락에 위치한 휴양소를 무사히 찾았다.

그러나 바다에서 바라본 보름달은 구름에 살짝 가린 것이 왠지 보통 때 달과는 다른 느낌이 들어 채 매우 분위기 있어 보인다. 갑자기 영화 울프에서 나오는 보름달이 생각난다.

아니나 다를까 그날은 바로 개기월식을 하는 날이었던 것이다. 분위기 있는 달과 조용한 밤바다 경치만 보면 환상적이었지만 휴양소를 빨리 가야 한다는 일념에 아름다운 밤바다의 정취를 느낄 새가 없었다. 30분 정도 걸려 오후 9시 20분 정도에 드디어 휴양소를 도착, 지친 몸에 물회와 매운탕, 식사를 시켜 휴양소 방 안에서 저녁을 대충 먹었다. 역시 경상도 음식은 유난히 맛이 없었다. 생선 매운탕에도 약간의 비린내가 나면서 간도 잘 맞지 않았다. 어젯밤 속초에서 직접 끓인 매운탕 맛이 그리워진다. 그러나 어쩌랴? 몸은 이미 피곤에 절여 있는데...

간단하게 샤워를 하고 맥주 한캔 남은 것을 종이컵에 반으로 나눠 참외와 같이 한잔하고 곧바로 잠자리에 들었다. 밤바다의 파도소리가 밤새 찰삭찰삭 귀를 간지럽히고 있었다.

커튼을 치고 너무 곤하게 잔 나머지 그만 잠자리에 누워 일출을 볼 수 있는 기회를 놓쳐버린 것이 너무 유감스러웠다. 오전 5시 30분, 이미 태양은 중천에 떠서 눈이 부실만큼 반짝이고 있었다. 베란다 문을 여니 바로 앞에 바다가 출렁거린다. 피곤하지만 않았으면 참 환상적인 입지조건을 즐겼을 텐데 참 아쉬웠다. 그러나 마음은 그렇지만 몸은 어제의 격렬한 장시간의 운전 때문인지 어깨가 뻐근했다. 참 혼자서 운전한다는 것은 못할 일이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휴양소 주위 소나무 밭을 산책하고 나서 아침으로 신라면을 끓여먹기 무섭게 우리는 짐을 챙겨 휴양소를 나왔다. 빠른 시간내에 호미곶 해맞이 광장과 등대 박물관을 보고 경주 인터체인지를 거쳐 경부고속도로를 타지 않으면 가뜩이나 연휴 마지막날이라서 밀릴 것이라는 걱정 때문이었다.

 

한반도에서 가장 먼저 해가 뜨는 육지, 호미곶

호미곶, 돌출된 모양이 마치 호랑이 꼬리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란다. 일제시대에는 이 한반도를 토끼 모양이고 토끼 꼬리라며 아주 열심히 세뇌시키다보니 지금도 어찌 보면 한반도가 토끼 모양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지금은 많이 호랑이 꼬리로 순화된 걸 보면 사람들의 의식이 많이 발전된 것같다.

육지의 동쪽 끝인, 흔히 지도에서 호랑이 꼬리라고 말하는 경북 영일군 대보면 장기곶이다. 그것은 '영일(迎日)'이라는 지명에서도 느껴지거니와 <삼국유사>에 나오는 연오랑과 세오녀의 설화를 떠올릴 때도 고개가 끄덕여진다. 장기곶에는 우리 나라 최초의 등대와 등대박물관이 있어 방학기간에 자녀들과 함께 이곳을 찾는 이들이 많다. 1903년 12월에 최초로 점등된 장기곶 등대는 높이 26.4m, 밑둘레 24m, 윗둘레 17m로 30만 촉광의 등명기가 설치되어 있어 22마일 밖에서도 그 빛을 볼 수 있다. 벽돌로 된 8각형 유럽식 건축양식으로 다른 고층 건물과 달리 기초부터 폭이 좁고 철근이 없는 벽돌로만 쌓아졌다.

등탑 내부는 6층으로 각층 천장에 조선조 왕실의 상징인 배꽃 모양의 문장이 조각되어 있다. 지금 등대박물관은 내부 수리중으로 12월에 개관할 예정이어서 아쉬움이 남지만 깨끗하게 조성된 해맞이 광장과 바다 위에 세워진 손조각이며 1999년 12월 31일 변산일몰 채화불씨, 2000년 1월1일 호미곶 첫일출 채화 불씨, 2000년 1월1일 독도와 피지 일출불씨를 합친 불씨가 전시되어 있다.

구룡포를 떠나 경주초입에 들어오니 시간은 벌써 오전 11시, 가는 길에 경주역전 옆에 잇는 유명한 황남빵이나 사려고 했는데 그러다 보면 시간이 지체되어 귀경길이 걱정되었다. 결국 눈물을 머금고 경주 시내방향 진입을 포기하고 곧바로 경부고속도로 경주 인터체인지를 타고 서울로 향했다. 그 때조금이라도 경주에서 늦장을 부렸으면 어떻게 되었을지 생각만 해도 너무 뻔하다. 그렇게 빨리 출발해도 8시간 씩이나 걸렸으니 말이다.

아무튼 꿈에 그리던 7번국도 자동차 종주를 성공적으로 마쳤다. 그동안 꿈꿔왔던 소원풀이는 한 것 같고 그 먼 길을 혼자 자동차 운전해서 완주했다는 사실이 뿌듯하지만 시간에 쫒겨 허겁지겁 다녔던 점이 매우 마음에 걸린다. 다음에 체력이 허락하고 갈 기회가 된다면 한 5박 6일 정도 날 잡아서 천천히 유유자적하며 동해일주를 했으면 하는 바램이다. 글쎄 그날이 언제가 될지는 나도 장담할 수 없지만 말이다.

 

>> 주요 일정 및 소요비용

  • 첫째날(2000.7.15.)

진부령-화진포해수욕장-아야진-속초 청호동(갯배 타기)-설악해수욕장-하조대 해수욕장(하조대,절벽카페 범핀)

。화진포 해수욕장 김일성 별장 등 입장료(2인 3,000원)
。화진포 막국수 (1인 4,000원)
。속초 청호동 갯배 (편도 1인 150원)
。광어회와 매운탕거리
   (속초중앙시장 내 지하 활어상가 20,000원, 초고추장 1,000원 별도 )
。참외, 쑥갓(2,500원 : 참외 5개 2,000원, 쑥갓 500원)
。카페 범핀(하조대 정자 옆 8,000원(아이스티, 블랙러시안 합계)
。기타(음료수, 맥주, 사발면, 과자, 수세미 퐁퐁 등 7,600원)

  • 둘째날(2000.7.16.)

외옹치항(성황당)-대포항-강릉 참소리 박물관-초당두부마을(점심)-망양 휴게소-구룡포 휴양소
。강릉 참소리박물관(1인 3,500원 TEL: 033-652-6573)
。초당 할머니 손두부집 (순두부백반 1인 4,000원 TEL: 033-652-2058)
。망양 휴게소 (커피 1인 600원)
。광어 물회 백반(1인 10,000원)

  • 셋째날(2000.7.17.)

호미곶 해맞이 광장- 경부고속도로
。호미곶 해맞이 광장 (자판기커피 1인 300원)
。경부고속도로 (고속도로 통행료 13,600원, 우동 1인 2,500원, 소프트아이스크
림 1인 1,000원 등 )
。휘발유 값 (3일 합계 110,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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